8. 전쟁, 전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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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황금보검을 찾을 것이다.”
미사흔은 다시 반복했다.
“눌지는 나, 미사흔도 아닌, 복호도 아닌, 스스로 신라 제국의 천 년을 열려한다. 하지만 신라는 동쪽 끝의 왜소한 나라가 아니다. 아틸라는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내 스스로 제왕이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김일제의 후손인 아틸라가 스스로 동쪽 끝 신라까지 당도할 때까지, 나는 애쓸 것이다.”
미사흔의 말이 끝나자 나머지 오형제들이 무릎을 툭툭 꿇었다.
“일찍이 고구려의 영락대왕(永樂大王)이 북쪽 벌판을 지나 염수(鹽水)까지 휘날리며 불확실한 광야에 위대한 제국의 운명을 걸어 드넓은 세상을 꿈꾸었듯이 우리 신라 또한 북쪽 끝 뿐 아니라 서역 끝까지 당도하리라 믿습니다. 그 장쾌한 역사를 우리가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미사흔은 새로이 일어섰다. 그는 느닷없는 족속의 정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 눌지를 원망하지 않으리라. 아틸라가 보낸 황금보검을 내가 가졌다는 것만으로 두려움에 떨어 나를 해하고자 했던 그저 소박한 인물이다. 나는 그의 소박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복호가 도둑질한 황금보검을 반드시 찾겠다. 그것만이 아틸라와 나 미사흔, 김일제의 후손들이 세상을 정복할 이유일 것이다.”
복면 사내 또한 구데기가 궁싯거리는 면상으로 부르짖었다.
“저 또한 그 장도에 동참하게 하소서.”
그러나 미사흔은 오형제가 차고있는 검을 순식간에 들어 그의 얼굴을 깊이 베었다. 그의 얼굴에서 구데기들이 뛰쳐나왔다. 미사흔의 얼굴에 구데기들이 튀었다. 미사흔이 구데기를 거두었다.
“내 눌지의 구데기를 없앴다. 다시는 그 면면(面面)을 보지 않으리라.”
그때였다. 말이 히이잉 소스라쳤다. 어디서부터 둥둥 땅이 울렸다. 저 멀리 뿌연 먼지가 기를 쓰고 달려오고 있었다. 미사흔은 어쩐지 가슴이 뛰었다. 무엇인가 새로이 살아돌아오는 두근거림이 쿵쿵 있었다. 나머지 오형제도 마찬가지였다. 뿌연 먼지가 부리나케 눈앞에 도착했다. 에첼이었다. 에첼의 뒤로는 쪽 째진 눈짓의 암팡진 여우같은 남자가 하나 있었다. 아마도 훈(The Huns), 이었다. 에첼의 눈짓은 건강한 기쁨이 넘쳐났다.
“아, 에첼...”
“아에테우스, 어서오시오.”
플라키디아는 아에테우스를 반갑게 맞는 척 했다. 아에테우스는 매우 정중히 인사를 했다. 어찌보면 원수나 다름없는 두 사람 사이엔 살기가 돋는 평화가 늘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평화를 깨트리는 사람은 다름아닌 플라키디아였다. 플라키디아가 아에테우스를 뱀의 혀처럼 날름날름 자극했다.
“아프리카의 백작, 아에테우스 장군. 그대의 야만인 친구가 로마를 삼키기 위해 그 전초전으로 주변 도시를 궤멸시키는데, 아직도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다니요? 그대의 명성에 흠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플라키디아 본인이야 말로 야만인 고트족에게 납치되었다가 살아돌아온 여우였다. 아주 약았다.
“저는 벌써 아틸라를 치자고 말씀드렸지만, 황제와 황후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대(大) 로마의 황제와 황후를 모시는 일개 장군일 뿐입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찌 감히 황제와 황후를 거스른단 말입니까?”
아에테우스는 슬쩍 비켜갔다. 그도 약았다.
“아틸라는 동로마에 관심이 없소. 서로마로 관심을 돌렸소. 그는 우리 주변을 치며 우리 스스로 공포감으로 굴복하게 만들려는 것이지. 더러운 야만인이 로마에 발을 들이려 하다니.”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자신의 호위병의 얼굴로 획 던져버렸다. 호위병의 얼굴은 순간 찢어지며 피로 물들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호노리아가 아틸라와 결혼했다는 소문까지 있소. 누가 탈출시켜 주었는지 반드시 기필코 밝혀낼거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아에테우스를 통째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아에테우스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에테우스는 여우 중의 여우 아니던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호노리아 공주를 우리 서로마로 돌려보낸 분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입니다. 저는 그때도 호노리아 공주를 원로원 의원과 결혼시키면 안된다고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 아틸라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발렌티니아누스는 칼을 들어 찢어진 얼굴로 피를 흘리고 있는 호위병의 얼굴을 푹 찔러버렸다. 아에테우스에게 하고 싶은 짓거리를 호위병에게 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 아틸라와 싸워줄 아에테우스가 필요했다.
“아틸라의 자존심이라면? 그런 야만인의 자존심을 지켜줄 의무는 로마에 없소.”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점점 생선가시 걸린 목구멍 소리를 내었다.
“아틸라의 자존심은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일이 아닙니다. 그에게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호노리아 공주는 스스로 걸어서 아틸라에게 갔습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아에테우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궁정에서 ‘훈의 친구’라고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는 아틸라의 성질과 로마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틸라와 싸워야겠소.”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당찬 선언에 플라키디아가 나섰다.
“당장 싸워선 안된다.”
“아닙니다. 당장 싸워야 합니다. 신(神)이 늘 아틸라 편을 드는지 확인하고 싶군요.”
플라키디아는 한 발 물러났다.
“아에테우스 장군, 방법을 찾아보시오.”
“용병을 사겠습니다. 그리고 기병을 양성하겠습니다. 또한 아틸라 치하에 있는 족속들과 비밀리에 접촉하겠습니다.”
아에테우스는 볼모 시절 형제처럼 자랐던 아틸라와 진짜 싸움을 신중히 준비하고 있었다. 이 결전은 로마에서의 자신의 운명도 판가름 날 판이었다.
“실행하게.”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감히 황제답게 일갈했다. 아에테우스는 목례하고 물러났다.
“잔인하고 멍청한.”
“전설의 검이 아틸라님께 도착했다!”
“아틸라 제왕 만세. 만세!”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