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글로벌 게임의 법칙 ‘국제표준’

이관섭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이관섭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때만 해도 축구공 규격이 나라마다 달랐다.

월드컵 공인구가 없던 이 대회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서로 자국의 공을 고집하는 기싸움을 하다가 결국 전반전엔 아르헨티나산 공, 후반전엔 우루과이산 공으로 경기를 치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FIFA는 이로부터 40년이 지난 1970년에 이르러서야 공정한 시합을 위한 월드컵 공인구를 도입했다.

국제표준은 글로벌 시장에서 축구경기의 공인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3대 국제표준화기구(ISO·IEC·ITU)가 14일 ‘2014 세계 표준의 날’ 메시지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표준(Standards level the playing field)’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GATT 체제에선 관세장벽이 글로벌 통상무대에서 협상의 주요 수단이었으나, 1995년 1월 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시험·인증, 기술규제 등 비관세장벽이 무역협상의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국제표준의 중요성도 크게 높아졌다.

특히 WTO체제 출범과 동시에 발효된 TBT(무역기술장벽) 협정에서 회원국들의 국가표준이나 기술규제에 국제표준을 의무적으로 적용할 것을 규정하면서, 국제표준은 공정한 글로벌 시장경쟁을 위한 기본 잣대로 자리 잡게 됐다.

더불어 국제표준은 한 번의 인증으로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국가 간 상호인증 기반을 조성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세계 각지에 손쉽게 판매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또 중소기업이 제품개발 시 글로벌 수준의 기술노하우가 축적된 국제표준을 활용하면 기술이전 효과를 통해 급변하는 시장경쟁에서의 기술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이에 주요 국가들도 국제표준을 자국의 정책과 기술규제에 반영해 자국 산업의 글로벌화를 통한 수출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국제표준을 주요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 초 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상품시장규제는 OECD 국가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관련 규제가 많다. OECD 평균 수준으로 규제를 낮추면 경제성장률이 약 0.3%포인트 추가 상승한다고 한다. 최근 정부는 우리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개혁 속도를 높이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의 대표적 사례는 해당 규제가 국제표준과 상이하게 제정돼 우리 기업이 내수시장과 세계시장에서의 룰이 다른 데서 오는 부담을 겪게 되는 경우다. 또 동일한 분야의 규제를 부처별로 중복 또는 상이하게 운영해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일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술규제를 도입할 경우에 국제표준 또는 국가표준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도록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는 2013년 1월부터 기술규제 영향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각 부처에서 기술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법령 제·개정 시 국제표준 또는 국가표준 준수 여부, 기존 기술규제와의 중복성 여부 등을 평가해 불합리한 규제를 사전에 걸러준다.

이처럼 국제표준 자체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국제적인 룰이라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룰메이커로서 국제표준을 선점하면 좀 더 유리한 고지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전략산업 분야 원천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제안하는 국제표준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여왔다. 그 결과 2002년 이전까지 24건에 불과한 국제표준 제안 실적이 2013년 말에는 총 563건으로 늘었다.

특히 HDTV, 스마트폰 등에 활용되는 MPEG(동영상 압축기술) 국제표준에 총 150여건의 우리 기술을 반영해 매년 약 3000억원의 로열티 수입 및 응용분야 기술경쟁력을 확보했다. 또 OLED, 플렉시블, PDP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분야 국제표준 제안은 우리 관련 산업의 성장 디딤돌이 돼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을 1위로 견인하는 데 기여했다. 최근에는 창조경제 산업엔진 프로젝트와 연계해 스마트자동차, 차세대소재, 웨어러블 스마트기기 등 미래 신성장산업 분야 국가표준 코디네이터를 지정함으로써 정부 R&D과제의 표준화 연계 등 전략적 표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의 규범이 되고 있는 국제표준을 새로운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도구로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014 세계 표준의 날’을 맞아 표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정부와 산업계가 한 뜻으로 국제표준 선도에 앞장선다면 우리 경제의 무역 3조달러 시대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kslee4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