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키르기스스탄에 현지인 기능수준평가 관련 출장을 다녀왔다. 우리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따라 우리나라로 입국하려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필수 코스며 우리 기업에 인력을 송출하는 해외 15개국 중 하나가 키르기스스탄이기 때문이다.
수도 비슈케크에 도착한 첫인상은 ‘허접’ 그 자체였다. 중앙선조차 없는 도로가 태반이고, 출장 중 경찰관의 속도카메라에 잡히자 현지인이 멋진 협상력(?)을 발휘하고….
시험 관리 어려움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한국어능력시험 시행 시,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식별시스템이 없어 시험 보기 전에 수험표와 응시자가 동일인인지 확인하는 데 한두 시간 보내는 것은 예사라고 했다. 심지어 어떤 여자 수험생은 수험표 사진에 비해 얼굴이 너무 말라, “여자 형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언니 대신 시험보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더니, “언니 얼굴은 전혀 다르다. 우리 집에 가면 확인할 수 있으니 같이 가자”는 식으로 막무가내였다.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더라도 당연히 우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재미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증거 확보에 그렇게 도움될 줄이야! 단순한 IT지만 그 위력을 재삼 절감하는 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정행위 증거를 확보했음에도 시험 종료 후 상대방이 시치미를 떼자 승강이는 다시 시작되고 사인을 받아내는 데만 몇 시간이 소모되기 일쑤였다. 개발도상국에서 시험 그 자체는 반나절 정도에 불과하지만, 감독하는 사람으로서는 시험 전후를 포함하면 하루가 족히 필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시험 시행을 위해 출장간 정부, 관련 기관 실무자는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설상가상으로 합격자 중 우리 기업에서 원하는 조건을 갖춰 입국하더라도 불법체류가 증가 추세라고 한다. 그것은 한 회사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유목민 특성 때문이라 한다. 이런 키르기스스탄의 인프라와 인력송출의 ‘어두운 면’은 어느 날 현지인 결혼식과 일상생활을 본 이후 반전됐으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머물렀던 호텔 지배인이 결혼식이 있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꼭 구경하라고 권유하기에 결국 가보게 됐다. 그곳 결혼식은 늦은 오후에 시작해 자정이 돼서야 끝난다. 하객 모두 한참 저녁을 먹더니 경쾌한 음악이 나오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여기저기서 중앙 홀로 나와 흥겹게 춤을 췄다. 어르신, 젊은이, 어린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식사를 하다가도 춤추는 장소로 기꺼이 몰려나왔다. 어느 정도 춤을 춘 다음, 한 사람 한 사람 제자리에 앉으니 맛있는 음식이 또 나오고 이를 즐기며 담소를 나눴다. 이어 익살스러운 퀴즈들로 폭소가 만발했다. 즉 음주와 가무의 반복으로 결혼식이 자정까지 가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행복 그 자체였다. 특이한 것은 결혼식 후 신부는 40일간 칩거할 뿐 아니라, 처음 며칠간은 아예 신랑 이외 외부인은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신혼 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행복과 함께 아이를 갖도록 해주는 주위의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문득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가 늘고, 결혼해도 애를 잘 갖지 않은 우리 현실과 극명히 대비됐다.
지금 정부는 ‘국민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전 세계적으로도 국민총생산(GNP)보다 갈수록 국민총행복(GNH)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군사정부 시절과 민주화세대에 비해, 요즘 세대는 말 할 것도 없는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어느 CEO모임에서 “주중 가족과 몇 번 저녁을 같이하세요?”라고 물었더니 태반이 전무했고, 심지어 회사 일로 바쁜데 무슨 한가한 질문이냐는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은퇴 후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자녀와의 대화 부족이었다고 한다. 직장에서 출세도 아닌 ‘단순 생존을 위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SNS로 소통해 보자. 이런 소박한 시도가 우리 국민행복시대를 앞당길 수 있기에….
오재인 단국대 상경대학장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