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상 최대 수출,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하며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와 함께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올해도 무역규모가 늘어 명실상부한 무역대국의 입지를 굳건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순히 수출 규모만 크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문화수준과 질서의식 등 품격을 갖춰야 한다.
국제사회는 2차대전 이후 냉전체제 속에서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를 결성, 동구권 국가 무기 수출을 막았다. 1990년대 들어 독일 통일과 동구권 붕괴 이후 COCOM은 폐지됐으나 민족·종교문제 등으로 인한 내전과 테러 등으로 각국이 위협받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1996년 바세나르체제를 결성했다. 바세나르체제는 앞서 구성된 원자력통제그룹, 호주그룹, 미사일통제체제와 함께 테러단체 등에 대량살상무기 등이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나라는 1987년 ‘한미 전략물자 및 기술자료 보호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대외무역법에 전략물자관리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대부분 기업은 전략물자가 무엇인지, 왜 수출관리가 필요한지의 인식이 부족했다. 정부의 관리시스템이나 지원책도 미비했다.
우리 정부는 무역규모가 커지면서 국제사회 무역규범을 준수하기 위해 4개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했다. 2007년엔 전략물자관리원을 설립, 전략물자관리 제도 개선, 홍보·교육 등을 통해 기업 인식 개선에 힘썼다. 그 결과 매년 전략물자 사전판정 신청건수가 늘어 지난해엔 전년도의 두 배인 1만5000건에 달했다. 올해도 작년 대비 2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과 연구기관이 자신들은 전략물자와 관련 없다고 생각한다. 전략물자는 공작기계, 암호 소프트웨어 등과 같이 일반산업용 물자이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는 물자를 모두 포함한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 중 98%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수출 대기업은 자율준수무역거래자 제도를 이용해 전략물자를 관리하고 있으나 아직 중소기업은 전략물자 인식이 낮아 모르고 불법 수출하는 사례가 일어난다.
전략물자관리제도는 종종 기업들로부터 자유무역을 거스르고 발목을 잡는 규제로 인식돼 폐지를 요구받거나 간과되는 일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일본 기업들도 제도를 준수하지 않거나 불법수출이 적발돼 재산과 명예·신뢰를 잃기도 한다.
과거 우리는 안전벨트가 생명을 보호해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등한시했지만 이제는 당연히 매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전략물자관리도 처음엔 번거로울 수 있지만 국가안보와 세계 평화라는 당위성을 이해하면 당연히 매야 하는 벨트로 인식될 것이다.
미숙한 제도이행과 전략물자 불법 수출은 부메랑이 되어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속 국가의 신뢰도를 하락시켜 종국적으로 무역악화를 초래한다. 우리나라도 세계 8위 무역대국에 걸맞게 국제무역규범을 준수함으로써 기업과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무역은 세계 각국의 거래이자 총성 없는 전쟁이다. 국제사회는 일정한 규칙을 정하고 지키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무시한 상대에 대해서는 주변국들과 공동으로 재제를 가한다. 전략물자관리제도는 국제사회에서 정한 규칙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일류의 무역국이다. 이에 맞게 국제무역규범과 질서를 지키는 품격도 갖춰야 진정한 무역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김인관 전략물자관리원장 kimik@kost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