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술금융 산업 활성화에 적극 나서면서 유관시장에 ‘기술심사인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심사인력 수요는 많은데 제대로 된 전문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증기관의 퇴직인력이나 비전문인력을 기술금융 심사인력으로 둔갑시키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이 보증기금사 인력은 물론이고 퇴직인력까지 마구잡이로 채용해 정부가 내건 ‘TCB사업 조건’을 맞추려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TCB로 선정된 모 기업은 국내 보증기관사 퇴직인력 등을 채용하거나 웃돈을 주고 보증업무 인력을 빼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들 인력이 기술심사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지점에서 서류 업무를 했거나 이미 현장에서 떠난 인력을 다시 채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문성이 필수인 기술 심사에 비전문인력이 대거 채용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한 보증기관 고위 관계자는 “최근 TCB업무를 담당하는 민간기업에서 자사 퇴직인력과 기술심사와 전혀 상관없는 일부 직원을 스카우트 해갔다”며 “이들 인력을 기술심사 전문인력으로 금융당국에 보고하고 기술심사 업무 적임자로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력 빼가기 현상은 금융당국의 기술금융 부흥대책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금융위는 기술거래사, 변리사, 기술사, 3년 이상 연구소 근무연구원 또는 3년 이상 기술평가 업무에 종사한 경력자 등 10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TCB 지정요건으로 내걸었다.
민간 TCB들은 당장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술평가 업무 경력자를 대거 채용해 금융당국의 지정요건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금융위는 업무승인 자체를 해주지 않는다.
변리사 등 전문인력이 민간 TCB로 이직하는 사례도 드물고 인력 자체가 없다보니 기존 보증기금사 인력을 빼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 현장일선에서 물러난 퇴직인력까지 스카우트하는 등 마구잡이식 인력 발탁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기술심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기술금융 양적 확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금융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금융사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까지 나온 상황에서 시중 은행 또한 기술심사인력 구하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술 심사 전문인력 구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라며 “기술 심사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다보니 각 분야별 전문성을 보유한 인력을 뽑아야 하는데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 민간 TCB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교육 등을 강화해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력 기술심사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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