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왕 푸네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1944년 단편소설 주인공인 푸네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지와 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다. 라틴어와 같은 외국어나 자연 도감과 같은 책의 내용은 단번에 외워버린다. 놀라운 것은 몇 분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주위 환경의 변화를 모조리 인지하고 그것을 다 기억한다. 푸네스의 문제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아무것도 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결국 푸네스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망각하지 못하면 푸네스처럼 괴로운 삶을 살게 되겠지만, 인간은 망각이라는 존재론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의 기억(플라톤의 용어로 anamnesis)을 몸 밖의 다른 사물에 외재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여기서 다른 사물을 저장 매체, 외재화하는 기술을 기억 기술이라 흔히 부른다. 저장 매체와 기억 기술에 의존해 지식은 세대를 넘어 전승됐고 인간은 발전해 왔다.
플라톤이 하이폼네마타(hypomnemata)라 부른 기억 기술의 발전은 특히 최근 놀라울 정도다. 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마존, 구글, 애플 등 거대 IT 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의 이념은 인류가 보유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디지털로 전환해 저장하는 것이다. 지나간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현재 벌어지는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저장된다.
문제는 이렇게 저장된 정보가 삭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긴 기억 기술이 역설적으로 ‘망각의 불가능성’을 초래하고 있다. 이른바 ‘사라짐의 사라짐’이라 불릴 이런 트렌드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푸네스’가 되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작년 그의 저서 ‘새로운 디지털’에서 “한번 올린 사진, 동영상, 댓글 등의 기록을 삭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라며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삭제 버튼이 삭제된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푸네스를 살릴 솔루션은 있는가? 슈미트 회장의 말과는 달리 구글은 ‘휴면 계정 관리자’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계정이 일정 기간 동안 휴면 상태에 있으면 남아 있는 자신의 데이터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송되거나 삭제하도록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디지털 장의사도 국내외적으로 꽤나 유망한 비즈니스다. ‘Lifeensured.com’의 경우 돈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사후에 인터넷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유언 형태로 남길 수 있다. 사망 신고가 접수되면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 메일을 보내고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등의 정보를 삭제해준다.
이런 비즈니스에도 불구하고 원천적으로 푸네스를 살릴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구글에서 정보를 찾는데는 수초면 되지만, 거기서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프랑스 기술철학자인 베르나르 슈티글러(Bernard Stiegler)의 지적대로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계의 논리에 따라 정보가 저장되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인간이 벗어났다고 생각한 미지의 세계가 디지털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최근의 카카오톡 감청 논란과 사이버 망명 사태는 프라이버시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기억과 망각의 문제다. 푸네스를 꿈꾸며 개발해온 기억 기술이 이제 처절하게 망각을 갈망하는 한계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잊혀지는 것이라면,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삭제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