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회의원 발언에 게임 이용자들이 들끓었다. 박주선 의원이 미국 ‘밸브’사가 한국 등급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을 유통시킨다며 강력한 제재를 요구했다. 거의 한 달 째 성토다. 마침 밸브가 게임물관리위원회 요청을 받아 한국어 서비스를 하려는 세계 게임 개발자들에게 등급 심의 신청을 권고한 게 확인됐다. 일부 게임의 한국어 지원도 사라졌다. 이러다가 아예 서비스까지 차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용자들을 덮쳤다. 페이스북 게임 중단 사태까지 겹쳐 반발은 들불처럼 번졌다. 이른바 ‘스팀 대란’이다.
다리미, 청소기 따위 앞에 붙는 그 ‘스팀’이 아니다.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이다. 밸브는 이 플랫폼으로 다른 회사 게임도 판다. 이용자는 계정 하나로 다양한 게임을 손쉽게 사고 즐긴다. 적지 않은 한국 게이머가 이 플랫폼에 많게는 수백만, 수천만원을 썼다. 서비스가 막히면 쓸모없어지니 화를 낼만 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같은 상임위와 당 소속 전병헌 의원이 서둘러 진화했다. 시행령을 고쳐 밸브도 구글·애플처럼 자율 심의기관으로 지정하자는 해법을 내놨다. 스팀 논란이 박 의원 지적이 아닌 정부 늑장 대응 탓이라는 방패도 펼쳤다. 박 의원도 해외 업체에 적용할 수 없는 규제라면 국내 형평성을 맞게 개선해야 한다며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사태는 조금 진정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분노는 지속된다. 게임 ‘마녀사냥’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여당과 정부가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중독법으로 산업계를 괴롭히더니 야당은 이용자까지 놀린다. 그러면서 산업 육성을 부르짖으니 더 어이없다. 역차별 규제라면 없애면 될 것을 하지도 못할 해외 규제를 강화하자니 비웃음만 산다.
‘두더지 잡기’ 게임도 안 해봤을 사람들이 온라인, 모바일, 소셜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 마음을 어찌 알까. ‘영어 학습 배려’ ‘조선어 서비스 등장’과 같은 스팀 관련 패러디도 아마 이해하지 못하리라. 다만 ‘게임할 시간에 공부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의 학부모 유권자 표를 ‘득템’하는 능력만큼은 게임 고수 뺨친다. ‘돈 되는 산업’임을 감각적으로도 아는 듯하다. 이들이 엉뚱하게 정책을 쥐고 흔드니 게임 산업계와 이용자만 지친다.
밸브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로 게임업체라면 부러워하는 기업이다. 창조경제에도 딱 맞는 모델이다. 이런 기업을 키울 고민을 할 시간에 엉뚱한 규제만 덧씌울 궁리만 하니 정책 무용론이 나온다.
물론 폭력적이며, 음란하며, 사행적인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 판단을 이용자가 아닌 정부가 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IS와 같은 폐쇄적 국가와 집단이나 하는 짓이다. 우리도 민주화 이후 콘텐츠 사전 심의를 폐지하고 민간 자율에 맡기지 않았는가. ‘표현의 자유’가 살자 산업 경쟁력이 저절로 생겼다. 자정 능력도 커졌다. 유독 게임 규제는 역주행이다.
다수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게임 시장이다. 이용자 스스로 좋고 나쁜 게임을 걸러낼 ‘감시자(Watch dog)’ 역할을 한다. 어쩌면 민간 등급 심의기구마저 필요 없게 될지 모른다. 게임물관리위 등급분류규정 첫머리는 이렇다. ‘등급분류 기준을 적용할 때 사회통념을 존중해야 한다.’ 제발 존중하지 말고 그냥 사회통념에 맡겨라.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