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치닫는 환율 전쟁...엔저·슈퍼달러에 부품소재 산업 `벼랑`

슈퍼달러와 엔저가 뒤엉키면서 일본 현지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출 경쟁력 하락에 이어 일본 기업과 맞설 대체재 개발까지 제동이 걸렸다. 앞뒤 모두가 막힌 형국이다.

치킨게임 치닫는 환율 전쟁...엔저·슈퍼달러에 부품소재 산업 `벼랑`

28일 외환시장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엔화 약세 기조와 달러화 강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중소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136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11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업황전망건강도지수(SBHI)는 전월(93.7)보다 6.6포인트 하락한 87.1을 기록했다. 지난 9월 상승세로 돌아선 지 2개월 만에 하락세 반전이다. 기업 투자심리 회복지연과 함께 엔저로 인한 가격경쟁력 약화가 최대 장애물로 꼽혔다.

부품소재 기업의 환율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우선 국내 부품업체의 중국 시장 판로가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현지 업체에 의해 가로막혔다.

한 중견 콘덴서 업체 대표는 “일본의 무라타 같은 업체들이 엔저를 바탕으로 중국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하면서 국내 관련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국내 상황은 그나마 낫지만 새로운 활로로 손꼽히는 중국 진출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민동욱 엠씨넥스 대표는 “국내 부품소재 업체들은 IMF 이후 지속적으로 엔저와 싸우고 또 극복해왔다”면서도 “최근의 장기 엔저현상은 특히 글로벌 경기불황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해 많은 업체들의 영업이익과 순이익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재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출 경쟁력 하락은 물론이고 미래 먹을거리인 대체 소재 발굴에 엔저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닛토덴코가 세계시장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ITO필름산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일본 닛토덴코가 엔저를 등에 업고 ITO필름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 대체 소재를 개발해도 수요처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기업들이 대체재 개발을 포기하고 일본 소재 등을 들여와 파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한 소재업체 관계자는 “ITO필름에 버금가는 성능의 저렴한 소재 개발을 완료했지만 ITO필름 가격이 내려가면서 대체 소재 수요가 거의 사라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엔화 하락, 달러 강세와 함께 위안 약세라는 복병도 숨어 있다.

위안화 가치를 사수하려는 중국과 이에 맞선 미국,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가 뒤엉키며 글로벌 외환시장은 일촉즉발의 전장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환율 치킨게임이 시작된 만큼 각국 환율 모니터링시스템을 가동하고 대기업보다 환율변동성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구제기금 조성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