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의 이름은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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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뺨이었다. 호노리아 공주의 핏빛 마음이 시녀의 얼굴을 매몰차게 물들였다. 시녀는 시뻘건 뺨으로 일어나 억울한 눈물을 흘렸다.
“아틸라님이 정복한 부족의 공주라고 합니다.”
호노리가 공주는 또다시 악다구니 속에서 패기 시작했다. 가차없었다. 마구잡이였다.
“공주라니? 감히? 대(大) 로마제국의 공주 앞에서 듣도보도 못하던 미천한 부족의 계집을 공주라고 불러? 내 앞에서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야? 공주는 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단 말이다. 알아들었어?”
시녀의 얼굴은 호노리아 공주의 장차 운명처럼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온 얼굴이 시뻘건 피로 범벅이었다.
“몇살이냐?”
“열아홉...”
시녀는 혀가 찍찍 찢어지며 비틀려 있었다. 대답이 비실비실 설사처럼 새어나왔다.
“이쁘다고 하냐?”
시녀는 고개를 겨우 끄덕였으나 사실 그대로였다.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나 이쁘다고 하냐?”
]“눈부실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녀는 입으로 피를 토하며 말을 이어갔다. 호노리아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분노와 울화는 그녀의 입을 통해 피로 튀어나왔다.
“뭐야?”
“아틸라 제왕님이 진정으로 사랑하시고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시고 그토록 잊지 못하시는 힐다 아가씨와 똑같이 닮았다고 합니다. 모두 웅성거립니다.”
호노리아 공주는 미친년 널뛰고 있었다. 단도를 빼어 들었다. 시녀가 아무렇게나 찢어진 눈틈으로 보더니 더럽게 떨었다.
“죽어, 죽어. 더러운 계집. 창녀. 힐디코. 힐디코. 죽어. 죽어.”
호노리아 공주는 시녀를 아무데나 닥치는대로 마구잡이로 찔렀다. 얼마나 찔러댔는지 시녀의 얼굴은 형제가 사라지고 뻘겋게 흐느적거리는 고기덩어리만 남았을 뿐이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칠갑이 되었고 그녀의 뚱뚱히 부른 배도 피칠갑이 되었다.
“네가 창녀야.”
시녀는 마지막으로 입을 달싹였다.
왕 눌지는 비밀스럽게 어떤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의 꿈에 보였던 것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두 개의 황금보검, 단 하나의 불꽃,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린 황금보검, 무덤, 누군가의 무덤...
“분명히 그 꿈은 미사흔과 관계가 있다. 미사흔이 내게 보내는 꿈일까?”
매일 매일 단서 하나씩을 던져주는 눌지의 꿈의 흔적은 조심스런 명령의 비서(秘書)였다. 어젯밤 꿈은 도무지 이상했다. 태양이 눈부셨고 그 태양이 어딘가를 비추었다. 그곳에 작은 덤불이 있었고 작은 물이 흘렀다. 그리고 쌍둥이처럼 똑같은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는 서라벌을 계속 돌았다. 선조의 능을 돌았다. 드디어 나무 두 그루를 찾았다. 쌍둥이였다.
“왕 미추의 능 옆이라니...”
그 아래 후미진 작은 언덕 틈새에 작은 입구를 작은 덤불이 감추고 있었다. 작은 물이 흘렀다. 그는 조심스레 덤불을 헤집고 들어갔다. 사람 하나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길목은 길잃은 눈먼 벌레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빛이 번쩍했다. 눌지는 멈칫했다. 눈 앞의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벌써 죽은 것인가?”
대략 동서로 35미터, 남북으로 13미터 정도 되는 크기였다.
“아, 아, 이게...”
금은으로 꾸민 말안장꾸미개, 유리로 장식한 금동말띠드리개,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화살통, 불타는 붉은색의 수 십의 석류석과 갖가지 빛깔의 수 십의 로만글라스까지 놀라울 정도였다. 모두 서역의 보물이었다. 과연 누가 이런 보물 창고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눌지는 냉큼 뒤돌아보았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