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실장)이 지시하니 아래는 무조건 따라야죠.”
모 중앙 부처의 고참 과장이 지난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열린 후 내려오는 업무 지시에 당황스러워 하며 내뱉은 말이다.
사정은 이렇다. 규제개혁회의 개최 이후 부처별 규제개혁 실적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이 전해지자 부처 실장들이 각 국·과장에게 규제개혁을 지시했다. 말이 규제개혁이지 사실상 몇 건의 규제를 폐지했거나 개선했다는 실적을 정량화해 보여줘야 하는 숙제다.
그는 “위에서 무조건 규제를 줄이라고 지시하니 아래에서는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규제를 찾아내야 한다”며 혼란스러워했다.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부처 내 규제개혁 시스템은 따로 노는 양상이다. 국무조정실이 규제개혁을 총괄하고, 부처마다 규제개혁 담당조직과 인력을 운영함에도 유기적 협력체계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무조정실이 각 부처 규제 담당과 정기적으로 협의하지만 정책 취지가 일선 업무과에 전해지기란 쉽지 않다. 부처 내 규제 담당자는 규제개혁 실적에 주안점을 두고, 일선 업무과는 상부 지시에 맞춰 수동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규제개혁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각 부처가 창의적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타 부처에 비해 나쁜 평가를 받지 않는 게 1차 목표로 굳어졌다.
A부처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각 중앙 부처간 협업 체제가 단순한 실적 공유를 넘어 시스템 혁신안을 논의하는 부분으로 발전하지 않는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중앙 부처가 수동적으로 움직이니 관계 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하기관의 한 관계자는 “중앙 부처가 개선할 규제 발굴을 요구하면 그간 국회나 간담회 등에서 썼던 자료를 보내준다”고 말했다.
따라서 밀린 숙제를 처리하는 듯한 ‘무늬만 협업’에 머물 것이 아니라 국무조정실과 각 부처 간, 각 부처 내부 조직 간에 규제개혁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협업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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