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선진국과의 기술협력 및 인재교류가 필수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는 해외우수연구기관유치사업(GRDC)은 국내 과학기술 분야와 해외 우수연구기관의 국제공동연구에 앞장서왔다. 이번 좌담회는 201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글로벌 석학 댄 셰흐트만(Dan Shechtman) 교수를 초청해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국내 기초과학 분야 연구 활성화 및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마련됐다.
◆참석자
△고성림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교수
△김한성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의공학부 교수
△댄 셰흐트만 201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서태석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 교수
△사회: 박영우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사회(박영우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해외우수연구기관유치사업(GRDC)은 과학기술 선진국의 핵심기술 및 연구인력 등 해외우수 자원을 국내에서 활용해 기초원천기술 확보와 기술시장을 선도하고자 추진되는 사업으로 2005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미국, 일본, 독일, 러시아 등 9개 국가의 우수연구기관을 유치해 국내에 총 24개소의 공동연구센터가 설립, 운영됐다. 국제협력 성과를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서태석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 교수=가톨릭대학교의 차세대 의학물리연구센터(ARCMP)는 스탠퍼드대학과의 단계별 협력 과정을 통해 해외 의료관련 기업과의 관계 및 협력도 더욱 공고해졌으며 이는 양 기관만이 아니라 국내외 관련 기업의 협력을 지원해주는 기반도 마련됐다.
◇고성림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교수=2010년부터 설립된 핀란드 VTT와 국제공동연구센터를 통해 각 기관의 우수 기술을 확인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또 유럽과의 정기적 기술교류회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유럽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오랜 기간의 공동연구와 국제협력이 국내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직접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김한성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의공학부 교수=연세-프라운호퍼 공동연구센터는 최근에는 국제공동연구의 결실로 나노다이아몬드-세라믹 신소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으며 연구센터 참여기업이 독일 현지법인 설립에 참여해 연구성과물을 상업화하는 결실을 얻기도 했다. 기초과학 기술이 혁신기술창업으로 이어진 창조경제 사례라고 본다.
◇사회=해외공동연구센터 유치사업을 통해 공동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은 물론이고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기초과학분야의 석학인 댄 셰흐트만 교수에게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과학기술 연구환경의 중요성과 국제협력의 경험을 들어보고자 한다.
◇댄 셰흐트만 노벨화학상 수상자=노벨상을 받은 연구결과는 1982년 미국에서 교수 안식년을 보낼 때였다. 그때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당시 국립표준국)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새로운 알루미늄 합금을 개발하고 있었다. 당시 실험실에서 정5각형 모양의 준결정을 발견했는데 이는 기존 결정학에서는 불가능한 내용이라 과학계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분야 최고권위자인 노벨상을 받은 라이언스 폴링 같은 과학자도 나를 사이비 과학자로 매도했다. 하지만 젊은 과학자들은 실험결과를 통해 나를 지지하고 이후에 노벨화학상을 받게 됐다.
이스라엘 교수들은 안식년 동안 보통 다른 나라나 학교, 연구소를 가서 국제협력의 기회를 찾는다. 다른 생각이나 기술을 가진 연구자를 만나 어떻게 생각하고 연구하는 지를 확인한다. 과학기술연구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가 하는 일이다. 협력이 많아질수록 연구는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나는 원활한 국제협력을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대학들이 한국어로 된 교재를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나도 집에서는 히브리어를 쓰지만 연구자들에게 공용어가 중요하다.
◇사회=노벨상을 받게 된 것도 결국 국제협력의 산물이라는 설명인가.
◇댄 셰흐트만=맞다. 내가 노벨상을 받은 계기 역시 국제공동연구의 산물이다. 당시 우리 연구그룹과 경쟁하는 독일의 연구그룹이 있었다. 우리는 경쟁 관계였지만 서로 감추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이는 경쟁이자 협력관계였다. 우리는 양쪽에서 만든 것을 함께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 그룹의 결과가 좀 더 좋게 나왔다. 그것을 계기로 독일과 이스라엘이 협력하는 새로운 연구그룹이 만들어졌다. 경쟁으로 시작했지만 협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와 기업이 참여해 클러스터 협력이 이뤄지는 형태로 확대됐다.
◇고성림=이스라엘에도 한국처럼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사업이 있는가.
◇댄 셰흐트만=그렇다. 연구기관끼리 경쟁해서 정부로부터 받는 것도 있고 국가 간 협력펀드도 있다. 독일, 미국, 프랑스, 영국 등 국가 간 협력펀드를 비롯해 민간기업 펀드도 있다. 이스라엘에도 삼성만큼 큰 기업은 없지만, 기업들이 당장의 상품 개발이 아닌 대학의 기초연구를 지원한다.
◇사회=해외우수연구기관 유치사업도 논문위주의 획일적인 연구성과 평가방법의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그 성과기준을 확대하고 이런 차원에서 센터의 국제협력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히 우수과학자를 국내에 머무르게 하는 수준이 아닌 창조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댄 셰흐트만=연구기관의 운영 성과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견이나 연구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논문, 특허기술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공동체에 미친 사회경제적 영향력도 평가를 해야 한다.
창조경제는 단순히 창의성이나 계획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창조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환경과 문화적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궁금한 것은 계속 질문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는 한국에도 필요하다.
한국 학생들과 강의를 진행하는데 문제를 하나 내고 이것을 푼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문제를 풀었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풀었다고 대답했다. 한국은 겸손의 문화가 있어 잘 나서지 않는다. 이는 문화적 차이지만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나는 집에서도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학생들에게 계속 말할 기회를 줘서 격려를 하고 칭찬을 해줘야 한다.
◇사회=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육부터 사회문화 전반의 투자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댄 셰흐트만=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재를 언제부터 키울 것인가 묻는다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유치원부터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과학적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다.
나는 6살 난 3명의 아이들에게 과학의 개념을 알려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비누방울 같은 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중력이나 자기장같은 과학의 기초원리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일도 과학자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재미있다는 느끼는 아이가 성장해 과학자나 기술자가 된다.
나는 정년보장 교수가 된 뒤로는 학생들에게 기술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초기기업)은 실패한다. 하지만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또다시 시작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은 기술은 잘 만들어져 있는 곳인데 기업가정신이 부족하다.
◇사회=기술창업과 창조경제활성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 조언 부탁한다.
◇댄 셰흐트만=한국에서는 아이디어를 팀장에게 말하면 팀장이 다시 사장에게 말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그 성과를 가로채거나 사장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이스라엘은 다르다. 말단 직원의 아이디어도 사장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 또 그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때 말단 직원이 사장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고 사장이 되길 원한다. 유연한 조직문화와 평등한 사회분위기가 이뤄져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회=해외우수기관유치사업도 단순히 우수 과학자를 초청하는 것이나 공동연구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선진국의 우수한 연구시스템과 연구문화 같은 연구풍토를 국내에 접목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나라가 갖지 못한 문화나 과학에 대한 태도를 진정한 창조경제를 태동시키기 위한 문화로 바꿔가는 노력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서태석=국제협력이 이뤄진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당장의 문화변화, 국제협력 같은 것보다 밑바닥부터 변화하는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고 연구자도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할 것으로 보인다.
◇김한성=노벨상을 받게 된 것도 결국 국제공동연구의 산물이라는 댄 셰흐트만 교수의 경험을 듣고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서는 해외우수연구기관유치사업의 역할이 매우 중대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풍토조성을 위해서도 정부차원의 국제공동연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고성림=해외 연구기관과 교류 협력을 더욱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화와 연구환경을 조율하고 연결하는 중간자가 필요하다. 특히 기업과 연결할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국제공동연구 사업이 그런 인재양성을 위한 기회의 장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