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재부품 업체들 중에는 100년, 200년의 전통을 가진 장수 기업이 적지 않다. 이들의 장수 비결은 흔히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이 꼽힌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찾아 뛰어드는 것이 아닌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혁신 전략이다.
독일 글로벌 소재 기업 바커는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바커의 출발지는 1903년 알렉산더 바커 박사가 설립한 ‘전자화학 컨소시엄 유한회사’다. 과학자들과 혁신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로 설립된 연구개발 중심 회사다. 11년 후 바커 박사는 만 68세가 되던 해 독일 부르크하우젠에 공장부지를 마련하고 바커그룹을 설립했다.
산업용 아세트알데히드, 아세트산, 아세톤 대량 생산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이후 장기적인 연구개발 지속으로 1947년 실리콘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1950년대 들어 반도체 웨이퍼용 초고순도 실리콘과 건축용 폴리머 파우더 바인더 사업까지 진출했다. 모태인 전자화학 유한회사는 지금도 바커그룹 제품의 기초 연구개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1897년 설립된 미국의 다우케미컬, 1863년 설립된 벨기에의 솔베이, 1865년 설립된 독일의 바스프 등 100년 전통의 글로벌 소재회사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설립 초기 표백제나 탄산소다, 콜타르 염료 등 일부 화학 분야에서 시작해 장기적 안목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지사와 생산시설, 연구소 등을 두고 있으며 단기적인 매출 성장보다는 장기 연구개발에 집중해 핵심 소재 원천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이들은 지금도 도시 생활문제 해결과 태양광 비행기 등 장기 혁신을 위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과 도전 외에 기업 가치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정부 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3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3대를 이어온 가업승계를 거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독일의 제약·화학 기업 머크가 대표적이다. 1668년 작은 약국에서 시작한 머크는 가족경영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독일은 기업 상속에 대한 세금공제율이 85~100%에 달한다. 독일의 많은 히든 챔피언이 창업한지 수세대가 지났지만 여전히 가족소유기업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다.
국내의 상속·증여세율은 최고 65%에 달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 등의 차이가 있지만 가업승계에 보다 호의적인 제도 역시 글로벌 소재부품업체의 장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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