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구개발(R&D) 역량을 혁신하려면 정부 주도 R&D에서 탈피해 민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SCI 논문과 특허 등 양적지표 위주의 정부 R&D 평가제도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3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개최한 ‘R&D 혁신 대토론회’에서 우리나라 R&D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정부의 R&D 과제 기획과 평가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자유토론 형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연구계, 산업계, 학계, 정부부처 등에서 온 참석자들은 현재의 제도를 바꿔야 R&D 혁신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우일 서울대 부총장은 “산업화 시대에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민간 영역이 발전했으니 이제는 이끄는 역할에서 밀어주는 역할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장은 “연초가 되면 정부가 각 분야 기술개발 로드맵을 발표하는데 공공기술 외에는 민간에 맡겨야 한다”며 “정부가 로드맵을 발표하면 모든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접어두고 정부 과제를 하러 가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평가기관 난립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부총장은 “우리나라 R&D 전문 평가기관은 13개 부처에 17개 기관이 있다”며 “미국과 독일, 프랑스는 단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17개 기관에 연구비 관련 규정이 372개가 있고 굉장히 빠른 주기로 바뀐다”며 “이래서는 대형과제를 맡은 사람이 노벨상 연구는 말도 안 되고 규정 숙지에 시간을 다 쓴다”고 지적했다.
R&D 기획의 바텀업 방식 전환도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송규영 울산대 의대 교수는 “17조원이 넘는 국가 R&D 예산 중 바텀업 과제 예산은 1조원 이하”라며 “R&D 예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조를 들여다보고 독을 손질할 때”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창조로 가려면 현재 R&D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고 톱다운과 바텀업의 비율을 봐야 한다”며 “개별 연구자가 자유로운 아이디어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하더라도 값진 실패를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가기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SCI 논문은 2.5배 증가했지만 정작 기술이 필요한 중소기업은 국가 R&D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의 외부 공동개발은 반토막이 났고 위탁개발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박 단장은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타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논문 말고 사업화 실적이나 글로벌 기술 경쟁력 등으로 평가기준을 완전히 바꿔서 글로벌 기업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국가 R&D가 미래에 대비하고 곳간을 채우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면서 “사업화가 목적이 아니라 선도적인 R&D를 하되 여기서 나오는 성과를 어떻게 수요와 연결시킬지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연구의 유연성도 언급하며 “도전적 연구, 유연한 연구를 위해서는 무빙 타깃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5년 후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는 채 5년 후 목표를 정해놓고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국 뒤처지는 연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우리 R&D의 우수성과와 사업화 실적이 투자 규모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며 “언제까지 국민께 기다려 달라고만 할 수 없으며 이제 성과로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R&D 혁신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며 “앞으로 산학연관이 합심해서 국민이 됐다고 할 때까지 제대로 완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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