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우주기구(ESA)가 발사한 혜성탐사선 ‘로제타(Rosetta)’호의 착륙선 ‘필레(Philae)’가 12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약 10년의 여정 끝에 이뤄낸 쾌거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단초가 된 ‘로제타석’처럼 46억년 전 태양계의 기원을 밝혀줄 정보를 수집한다고 하니 전세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로제타호는 지난 2004년 발사된 뒤 4번이나 행성 중력의 도움을 받고 태양열 발전으로 동력을 얻었다. 태양빛이 도달하는 강도가 줄어들자 3년간은 핵심 장치를 제외한 모든 기기 전원을 끄고 동면상태로 날았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실제로 이뤄진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모든 걸 계산해 컴퓨터에 프로그래밍을 하고 10년 동안 로제타호를 제어했다. 비행체를 준비하고 항해시키는데 투입된 비용은 14억유로(약 1조9000억원), 시간은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EU 각국이 오랜 시간 투자를 하며 인내심을 보인 이유는 우주항공 기술은 범용 기술 개발의 발판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국·독일·일본이 각종 제조·소프트웨어·소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우주항공기술 발달 덕이 크다. 경제개방 후 뒤늦게 첨단 기술 개발에 뛰어든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이유 중 하나도 오랜 기간 쌓아 온 우주항공기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일자리 1000만개를 창출했다. 미국 연방예산 0.5%가 NASA 한 기관에 투입된다.
한국은 뒤늦게 우주산업에 투자한다고 나섰다. 이제야 OECD과학기술위원회 산하 우주포럼에 정식회원국으로 등록한다고 한다. 유로컨설트는 국내 연간 우주개발 예산을 2억800만달러로 추산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204배, 러시아는 32배, 일본은 17배, 중국은 15배를 투자하고 있다.
로제타호를 보면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설레고 흥분됐다. 동시에 부러움과 두려움이 들었다. 우주 과학자를 대접하는 문화가 앞으로 다가올 기술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대충 짐작가기 때문이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