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TV가 널리 보급되면서 그동안 가정의 중심인 거실에 자리 잡았던 아날로그TV가 안방, 작은방, 서재 등으로 밀려나고 있다. TV를 두 대 이상 보유하는 가구도 늘었다.
지상파 디지털방송에 따라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면서 아날로그TV는 고스란히 유료방송 사업자, 특히 케이블 사업자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이런 현실은 유료방송 사업자에 진정한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일반적 의미는 유료방송 사업자가 디지털 셋톱박스로 다양한 고화질 채널과 함께 양방향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각 방에 놓인 아날로그TV를 시청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유료방송은 디지털 전환 방안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지난 3월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케이블TV 가입자 1483만가구 중 57.9%에 달하는 858만가구가 아직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이 가운데 47.3%에 달하는 406만가구는 디지털TV를 보유하고도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해야 한다. 지상파 고화질(HD) 디지털 방송은 시청할 수 있지만 이외 채널은 가입 상품에 따라 아날로그 화질로 볼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경제적·기술적 이유로 디지털TV로 디지털 방송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아날로그 가입자의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한 실마리는 지난 3월 미래부가 케이블TV 사업자에 허용한 8레벨 측파연구대(8VSB) 전송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는 8VSB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8VSB 전송 방식은 고가 셋톱박스나 추가 요금 부담이 없기 때문에 시청자가 간편하게 HD 화질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다. 소비자 방송 수신 환경을 개선하는 데 8VSB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8VSB 이용자도 화질 개선 효과와 편리한 이용성에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행 8VSB 전송방식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8VSB 변조 방식을 사용하면 기존 아날로그 방송 신호가 송출되지 않기 때문에 아날로그TV를 보유한 가구는 방송을 볼 수 없다. 8VSB를 아날로그TV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전환하는 DtoA(Digital to Analog) 컨버터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셋톱박스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DtoA 컨버터가 노약자 등 셋톱박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느끼는 연령층에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케이블TV 사업자는 디지털 방송, 아날로그 방송, 셋톱박스 없는 케이블 방송이라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정책 당국과 케이블TV 업계는 소비자의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해 아날로그·디지털 신호를 동시에 송출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아날로그TV를 보유한 가정도 안정적으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으로는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고 조기에 디지털 방송 전환을 완료하고 주어진 주파수로 다양한 사업을 하는 것이 사업자, 정책 당국, 소비자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현재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에게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정책 당국과 사업자들의 책임 방기다.
한시적으로 아날로그·디지털 신호를 동시에 송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소외받는 시청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IT강국이 갖춰야 할 면모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 october@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