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유럽연합(EU) 우주탐사선 ‘로제타’의 로봇 ‘필레’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혜성에 착륙했다. 로제타가 2004년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지구를 떠난 지 꼭 10년 8개월 만이다.
우주탐사선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36년이다. 천문학자들이 예상하는 실제 태양계 끝 ‘오르트 구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약 3000년 세월이 걸린다.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으로는 도저히 다른 은하계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동면’과 ‘웜홀’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는 ‘동면’과 ‘웜홀’을 이용해 시·공간 제약을 극복하려 한다.
웜홀을 통해 시·공간을 가르는 방법이 아직까지 이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 동면은 보다 현실적이다.
동면은 신체 기능을 급속히 얼려 가수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신체 기능을 정지시켜 노화 등 생리현상 진행을 막는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동면 기술을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고 있다. 인위적으로 환자 체온을 낮춰 심정지 이후 다시 심장이 뛰는 환자의 뇌와 장기가 활성산소 등으로 손상되는 것을 막는다.
가장 가까운 예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저체온 치료를 받았다.
오이빈트 토이엔 박사가 이끄는 알래스카 페어스뱅크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알래스카 흑곰은 체온을 5~6도 낮추는 것만으로도 대사율을 정상 범위의 25%로 떨어뜨렸다.
동면 기술을 이용해 먼 우주로 인류를 보내는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됐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35년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마스-1’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로 우주비행사를 동면 상태로 비행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근육 손상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주어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다. 진시황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영생을 바랐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사후 자신의 몸을 영하 200도 액체질소 속에 담그길 요청하며 부활을 꿈꾼다.
인터스텔라에는 우주선 안에 23년이 넘게 혼자 방치된 우주인 ‘로밀리’가 등장한다. 그를 두고 행성에 내려간 남녀 주인공이 3시간의 사투를 벌이는 동안 상대성이론에 따라 23년(행성에서 1시간이 우주선에서는 7년) 동안 홀로 우주선을 지킨 것이다.
로밀리는 23년간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로 “인생을 자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라고 대답한다. 웜홀과 블랙홀의 화려한 컴퓨터그래픽(GC)을 제외하면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시간을 극복하는 것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독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문명을 만들어왔듯이 이 또한 언젠가 마주하게 될 진화의 한 과정이 아닐까.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