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는 세계 으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신 ‘과학기술산업전망보고서’에 따르면 R&D 집약도는 4.36%로 세계 1위다. 국내총생산(GDP)에서 R&D 투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시절부터 ‘과학기술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 아래 R&D 투자를 매우 중시했다. 정부는 다른 예산을 줄여도 R&D 예산만큼 줄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최근엔 기초 과학기술 R&D 예산을 늘리는 추세다. 올해 이 예산을 4조6838억 원으로 늘려 전체 R&D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7.1%까지 높였다. 정부는 이 비중을 내년 38%, 2017년 4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들여 마련한 예산을 정작 제 때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검토보고서에 따르면 R&D 예산 중 기초 연구비 비중이 최근 4년 동안 4.3%포인트(P) 늘었지만 실제 집행액은 1.5%P 증가에 그쳤다.
이렇게 된 것은 정부가 기초 R&D 비중 제고 목표에 너무 집착한 탓이라고 한다. 목표치를 맞추느라 응용·개발 분야에 들어갈 예산을 기초 연구 분야로 바꾸거나 심지어 사업계획도 수정한다. 우리나라가 R&D 투자 1위이나 그 절대액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국가 재정 규모가 큰 나라에 훨씬 뒤진다. 이미 짠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그나마 이 격차를 좁힐 수 있는데 현실은 거꾸로인 셈이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했다. 기획재정부와 미래부는 부처별 명확한 사업 계획을 바탕으로 기초 R&D 예산 비중을 조정하는 개선책을 찾는다. 이런 접근도 필요하지만 예산 집행기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산 책정과 집행의 불일치는 현장과 떨어질수록 더 많이 나오게 돼 있다. 이런 불일치가 민간 기업에는 거의 없는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집행기관이 예상치 못하게 쓰지 못한 예산을 더 긴요한 다른 곳에 쓸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