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정작 日 기업엔?

엔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기업내에서도 냉·온탕이 나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 보도했다.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반적으로 중소업체보다는 ‘대기업’, 내수업체보다는 ‘수출기업’에 유리하다. 하지만 취급 품목이나 관련 부품 등 원·부자재의 수입 여부에 따라서도 환율 수혜 여부가 갈린다.

엔-달러 환율 추이(단위:엔)
 <자료:톰슨로이터·FT>
엔-달러 환율 추이(단위:엔) <자료:톰슨로이터·FT>

엔저의 축복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FT는 도요타자동차를 지목했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회계년도(4~9월)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13% 늘어난 1조1268억엔(약 10조6725억원).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중이다.

도요타는 전차종의 20% 가량을 일본 본토에서 생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해외로 수출한다. 그만큼 환율 혜택 폭도 커, 달러당 1엔 떨어질 때 마다 이 회사 영업이익은 2%씩 상승한다.

이에 따라 도요타는 최근 각종 수당을 신·증설, 실질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올해 예상 순익도 당초 1조7800억엔에서 2조엔으로 늘려 잡았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나카니시 타카키 애널리스트는 “도요타의 이번 수정 순익은 달러당 105엔이라는 보수적 견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연말 엔저 현상이 현 환율(약 116.3엔) 보다 강세를 보일 경우, 도요타의 순익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엔저 기조 하에서는 달러기준 결제액을 엔화로 환전시 수출형 제조기업에 유리하다. 계열사와 해외지사에서 들어오는 수익도 늘면서, 비용은 감소한다. 급격한 약세만 아니면, 달러당 130~140엔까지 떨어져도 일본 대형 제조업체들에게는 유리하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지난달 미즈호은행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달러당 105~115엔대까지 떨어질 경우, 대형 상장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회계연도 대비 7% 가량 오른 1조9000억엔으로 늘어난다.

반면, 비상장업체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조3000억엔과 6500억엔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엔저에 따른 비용증가분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쿄 쇼코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올 1~9월중 엔저 영향으로 파산한 업체수가 214개에 달했다. 전년 동기 대비 2.4배나 늘어난 수치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엔저 현상이 꼭 반가운 것만도 아니다. 소니는 이미지센서와 디지털카메라 수출에서 환율로 재미를 봤으나, 관련 부품을 해외에서 달러화로 구매해야 하는 스마트폰과 게임기 부문에선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그 결과, 소니는 달러당 1엔 떨어질 때 마다 영업이익은 20억엔씩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요시다 켄이치로는 “우리와 같은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업체에게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는 악재”라고 꼬집었다.

내수형 대기업 역시 한계에 봉착하는 상황이다. 일본 최대 식품업체인 아지노모토는 최근 자사 냉동식품중 60개 제품의 판매가격을 내년 2월부로 10%씩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 이토 마사토시 사장은 “엔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이에 따른 물가 상승과 소비 침체를 우려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