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우연히 금융위원회 기술금융 현장투어 때 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과 저녁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그의 첫 마디는 “이제 좀 있으면 백수 되는데, 소주나 한잔 주세요”라며 너스레를 떤 기억이 난다. 딱딱한 간담회장에서 유독 진 사장 테이블만 시끌벅적하고 웃음이 묻어나왔다.
그가 보여준 친근함과 진정성이 지금도 기억난다. 첫 느낌은 참 소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술금융과 관련 의견을 개진할 땐 거침없는 전문성을 발휘했다. 벤처기업 지원을 많이 했던 기관에 몸담아서인지 기업이 필요한 것이 무언지 먼저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과 사가 확실했다.
작금의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옥상옥, 불통 기관 1호라는 평가다. 상생과 소통보다는 엄포와 막대한 감사권을 앞세워 ‘무소불위’의 삐뚤어진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KB 전산사태 때가 그랬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양사태, KT ENS 대출사기 등 굵직한 금융사고가 터질때마다 금감원은 금융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 그 이상은 없었다.
오늘 진웅섭 금감원장이 취임했다. 취임식 현장에서 그는 금융감독의 틀을 ‘불신’의 기조에서 ‘상호신뢰’의 기조로 전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금융권, 연구기관 등과 머리를 맞대고 수년간 발생한 금융사고의 원인을 심층 분석해 ‘두껍고 강한 방패’와 같은 시스템 구축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신임 금감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영화 명량 대사 중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바꿔 말하면 ‘금융사가 있어야 금융감독원이 있고, 금감원이 있어야 금감원장도 있는 법’이다.
전남 해안군 문내면 학동리 해협,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절망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듯, 절망과 위기에 빠진 한국 금융시장을 회복시킬 ‘진량’의 지혜를 기대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