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혁신 3.0]머뭇거리는 제조업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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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분기를 기점으로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내리막을 걸으면서 국내 후방 제조업은 크게 흔들렸다. 세계 1위 스마트폰업체 삼성전자의 수요를 믿고 사업을 벌여온 국내 제조기업은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과 대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침체와 ‘엔저’ 등 대외 변수까지 겹치며 국내 제조업을 두고 위기감이 감돌았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취약한 생태계의 한계를 드러내며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를 감지한 정부는 제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하며 한국 제조업의 새로운 진화를 모색했다. 이렇게해서 나온 것이 ‘제조업 혁신 3.0’ 전략이다.

[제조업 혁신 3.0]머뭇거리는 제조업 혁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6일 청와대에서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오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경공업 중심의 수입대체형 전략을 ‘제조업 1.0’이라 하고, 조립·장치산업 위주의 추격형 전략이 ‘제조업 2.0’이었다면 이제는 융합형 신제조업을 향한 ‘제조업 혁신 3.0’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된 제조업 혁신 3.0 전략은 △융합형 신제조업 창출 △주력산업 핵심역량 강화 △제조혁신기반 고도화 3대 전략과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SW) 기반 공정혁신, 소재·부품 주도권 확보, 동북아 연구개발(R&D) 허브 도약 등 6대 과제로 구성됐다. 이어 한 달 뒤 해외 진출 촉진 전략과 자유무역협정(FTA) 확대·활용, 정상외교 성과 극대화 과제가 더해져 총 4대 전략, 8대 과제 체제가 갖춰졌다.

주된 내용은 제조업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IT·SW 융합으로 신산업을 창출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고, 추격형에서 선도형 전략으로 전환해 한국 제조업만의 경쟁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는 2020년 1만개 공장 스마트화, 혁신제품 사업화를 위한 실증 시범특구 조성, 동북아 공동 R&D 프로그램 신설 등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제시됐다.

7월 말에는 산학연관 전문가 26명으로 구성된 ‘제조혁신위원회’가 발족됐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공동 위원장을 맡아 무게감을 높였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고 지금은 통신 분야에서 또 한번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는 황창규 KT 대표, SW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조현정 SW산업협회장, 국내 정보기기 디자인 분야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등 내로라하는 업계 전문가가 위원으로 참여해 내실을 기했다.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용만 회장은 “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각 분야에 정통한 분들이 소통하고 통섭하며 팀 플레이를 펼친다면 한국 제조업이 전인미답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6월 말 첫 전략 발표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일부 분야에서는 움직임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오찬간담회에서 부처간 협업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던대로 산업부는 지난 8월 교육부·고용노동부와 함께 제조업 혁신 3.0 세부대책 중 하나인 산업별 인적자원개발협의체(SC) 역량 제고 및 기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스마트공장 11개 모델이 개발돼 일부 보급 사업도 착수됐다. 정책 수립을 위해 산업부 직원들이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밤샘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초기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아쉬움이 더 큰 편이다. 제조업 혁신 3.0을 구현할 드림팀이라던 제조혁신위원회는 7월 말 발족과 함께 1차 회의를 가진 후 아직 2차 회의를 못 열었다. 발족할 때는 매월 한 차례씩 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일정 조율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위원장이 참여하는 전체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소그룹 형태로 관심 있는 사안에 비공식 회의를 가진 것이 성과다.

세부 대책 수립·시행도 속도를 못내고 있다. 당초에는 향후 3년이 우리 제조업 재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신속한 추진 의지를 보였지만 3분기 중 내놓으려했던 13대 산업엔진별 세부 추진계획,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추진 계획은 아직 소식이 없다. 자연스레 초기에 비해 정책 추진력과 가동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세부 계획 수립 지연은 이르면 올 연말 제조업 혁신 3.0 관련 종합대책을 모두 모아서 한꺼번에 내놓겠다는 방침 탓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종합선물세트’ 형태의 정책을 발표해 또 한번 주목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월 이미 한차례 전체 전략 추진계획을 발표한데다,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된다는 위기감이 형성된 상황에서 세부 계획 수립·시행이 늦어지는 것은 문제다. ‘전시행정’에 치중한 나머지 정책 수립·시행의 속도감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상직 장관이 지난 제조혁신위원회 발족 때 “후속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로 정책 추진에 속도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차질없이 시행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세부 계획 수립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