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틸라 더 실라
1
왕 눌지는 다시 그 비밀의 묘지로 들어섰다. 신비한 서역의 보물들은 먼지도 없이 여전히 빛이 창창했다. 눌지는 형형색색의 로만글라스 조각들을 살펴보았다. 이 신비한 유리는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눌지의 깊은 심정까지 비추어냈다. 바로 꿈에서 보았던 그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왕 눌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앗! 바로 그였구나.”
작고 째진 눈에 묘한 고양이 눈빛을 가진 그였다. 눌지는 비로소 자신의 꿈의 방향을 이해하게 되었다. 눈물이 올라찼다. 그러나 자신의 눈물을 깨우지 않기로 했다.
“그는...”
금은으로 꾸민 말안장꾸미개, 유리로 장식한 금동말띠드리개,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화살통, 불타는 붉은색의 수 십의 석류석과 갖가지 빛깔의 수 십의 로만글라스까지 하나하나가 그저 서역의 보물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역사의 응집이었다. 흔들림없이 응집된 역사의 지층(地層)이었다. 결국 지층은 놀라운 미래였다.
“그는 이미 신라에 당도했었구나.”
“아틸라는 벌써 신라에 당도했었다.”
미사흔은 문득 말을 멈추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틸라는 오래 전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나보다 먼저...황금보검 보다 먼저...”
에첼의 눈은 점점 커졌다.
에첼은 아틸라가 보내고 있는 역사의 폭우를 뚫고, 푸르스름한 새벽 아틸라 진영에 낙엽처럼 도착했다. 그녀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말에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아틸라의 신녀가 에첼을 발견했다. 그녀의 지나친 후각은 에첼을 살릴만 했다. 신녀는 에첼을 자신의 거처로 옮겼다. 에첼은 한참 후, 겨우 눈을 떴다. 아직도 아랫배가 싸르르 아팠다. 지금이라도 당장 에첼의 자궁은 묵직한 무엇인가를 토해낼 것처럼 꿀럭거렸다. 쏟아질 듯 위태했다.
“임신 중에 그렇게 오래 말을 달리다니...”
“아이를 잃게 되겠습니까?”
에첼은 본능적으로 다급했다.
“그건 신만이 아신다. 살아날 운명이라면 살 것이고 죽을 운명이라면 죽을 것이다.”
에첼은 벌써 모성으로 무장한 에미의 살벌한 눈빛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하찮은 삶보다 아틸라의 꿈을 선택했다.
“아틸라 왕자님을 빨리 뵈야합니다. 급한 일입니다.”
순간 신녀의 흰 눈알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신녀의 거처에 있던 물건들도 함께 요동이었다. 에첼은 신산한 불길함에 숨을 죽이고 신녀만 바라보았다.
“너는 막을 수 없다. 이미 시작되었다.”
신녀의 흰 눈알에서 피가 녹아내렸다. 벌떡 일어나며 에첼에게 욕을 시작했다. 무언지 모를 저주를 뿜었다.
“네가 저주를 갖고 왔어. 네가 역사의 저주를 몰고 왔어.”
신녀는 흰 눈알은 뜨거운 피와 함께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에첼은 몸을 일으켜 보았지만 곧 쓰러지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 신녀의 저주는 끝이 없었고 거처의 물건들은 발버둥치며 깨지며 부숴지며 무너졌다. 검은 연기가 뱀이 또아리 틀 듯 휘감아돌기 시작했다. 신녀는 우우우 악다구니였다.
“아아아...”
검은 연기가 신녀를 완전히 먹어버렸다. 이제 이곳은 무덤이 되었다.
“신은 폐하께서 무슨 노여움으로 아에테우스 장군을 죽이셨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페하께서는 자신의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버렸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아폴리나리스는 발렌티니아누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적된 비난의 말로(末路)였다. 발렌티니아누스는 치명적으로 돌아선 그의 눈빛을 애써 피했다. 그 눈빛은 곧 원로원 전체의 눈빛이기도 했다. 로마 시민들 뿐 아니라 원로원마저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로마의 수호자를 잘라낸 대가는 참혹했다. 세상에 아무도 그의 편이 없었다.
아에테우스를 직접 암살하며 손에 치욕의 피를 묻혔던 페트로니우스마저, 그는 박대했고 외면했다.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은데 분개한 페트로니우스는 아에테우스의 사위인 트라우스티아, 그리고 아에테우스의 훈족 친구 옵틸라와 함께 황제암살을 준비한다. 운명의 날은 발렌티니아누스가 병사들의 활쏘기 훈련을 독려하기 위한 행차였다. 그곳은 교회 앞 광장이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