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유행 좇지 말고 양산 가능성 높은 기술 선점해야"

[이슈분석]"유행 좇지 말고 양산 가능성 높은 기술 선점해야"

“해외 선진국의 연구개발 사례에만 집착하면 우리는 계속 2등 밖에 못 합니다. 유행을 좇는 연구가 아니라 5~10년 안에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잘 판단해 준비해야 합니다.”

최근 단일벽탄소나노튜브(SWCNT)의 순도를 99.9925%로 높여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술 연구논문이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진성훈 인천대 전자과 교수와 미국 존 로저스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등이 공동 진행했다. 실리콘을 대체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자 부문에서 그래핀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SWCNT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SWCNT는 일반적으로 탄소나노튜브로 불리는 다중벽탄소나노튜브(MWCNT)보다 합성이 어려운 고급 합성소재다. 전기적 특성이 우수하지만 웨이퍼 상 정렬된 순수한 반도체 특성을 갖는 고밀도의 SWCNT만 얻기가 어려웠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지 못해 양산화에 걸림돌이 됐고 지난 2010년 그래핀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세계적으로 그래핀이 새로운 나노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관련 연구에 인력과 자원이 몰린 것은 당연하다.

진성훈 교수와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이종호 교수는 유행처럼 특정 분야에 연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린·레드 LED 기술이 상용화된 후 높은 기술 장벽으로 블루 LED 상용화가 더뎌지면서 관심이 멀어졌지만 끝까지 매달린 연구진이 결국 기술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종호 서울대 교수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린 논문 중 상용화된 기술이 몇 개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이 부족하다지만 단순히 기술만 확보하는 게 아니라 5년 10년 뒤에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내다보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성훈 인천대 교수는 “SWCNT는 기술 난이도 때문에 연구진 풀이 절대적으로 적다”며 “그래핀과 CNT가 차세대 나노소자로 함께 각광받지만 경쟁력 있는 분야가 서로 다르므로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관심이 많은 연구 분야를 맹목적으로 좇지 말고 한국이 전략적으로 세계시장을 주도·선점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종호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 사례를 먼저 살피고 연구나 정책 수립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1등 할 수 있는 분야를 두고 2등에 그치는 셈”이라며 “세계서 1등할 수 있는 한국만의 미래 기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과 인력양성에 큰 투자를 하고 상당한 수준의 논문도 많이 발표하고 있어 향후 5년 뒤 경쟁 구도를 짐작하기 힘들다”며 “기업이 최고 수준의 인력을 키우는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왼쪽)와 인천대 진성훈 교수
서울대 이종호 교수(왼쪽)와 인천대 진성훈 교수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