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과감해졌다. 삼성의 이번 빅딜은 ‘선택과 집중’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과감한 인수합병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비주력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전략을 본격화한 것이다. 특히 이번 매각은 시장에 충격을 던져줄 정도로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이준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민간 주도로 국내에서 진행된 첫 번째 초대형 거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매각은 확실히 수익성이 담보되거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서 잠재력이 확인되지 않는 분야는 과감히 정리한다는 삼성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삼성 내부에서는 삼성테크윈의 방위산업 부문 글로벌 경쟁력에 물음표가 끊이지 않았다. 삼성 입장에서는 국내로만 만족할 수 없고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테크윈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를 느낀 것이다. 고속 마운터를 개발하는 등 그동안 잠재성은 인정받았지만 성과 측면에서는 해외 유수 기업과의 경쟁이 쉽지 않았다. 삼성 입장에서는 추가로 막대한 자금을 쏟거나 아니면 정리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화학 부문 정리도 마찬가지다. 삼성정밀화학이 남았지만 이는 삼성 주력사인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때문이다. 이미 석유화학은 그룹에서 볼 때 비주력 사업이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급부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삼성종합화학은 지난해 매출 2조3642억원에 57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 석유화학 계열사들의 연간 총 매출액은 10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그룹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삼성이 확실히 1등을 할 수 있는 사업에만 주력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는 매각 등의 조치를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은 화학 부문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매각했지만 삼성정밀화학과 삼성BP화학은 매각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바꿔보면 이들은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정밀화학은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인 이차전지 분야를 취급한다. 삼성정밀화학은 양극활물질 연구개발에 4∼5년간 전념했으며 울산에 생산시설도 갖췄다. 올해 8월부터 삼성SDI에 이차전지 소재의 하나인 양극활물질을 공급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에 반도체 현상액, 레이저 프린터 토너 등을 공급한다. 삼성BP화학이 만드는 초산과 초산비닐 역시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초산은 의약품·사무기기 잉크 등에, 초산비닐은 LCD·태양광 소재 등에 활용된다.
이번 매각은 최근 삼성 주요 계열사 합병과 삼성전자의 과감한 인수합병(M&A)에 이어 진행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룹 조직을 단순히 함으로써 사업 부문의 경쟁력과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의지다. 그와 동시에 필요한 핵심 기술은 외부에서 적극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들어서 진행된 계열사 합병 현황을 보면 지난해 말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양수한 데 이어 삼성SDS와 삼성SNS가 합병했다. 올 초에는 에버랜드가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에 넘겼으며 4월에는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이 조직을 통합했다. 6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7월 삼성SDI와 제일모직이 합병했다. 다음 달에는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이 합병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조직에 변화가 예상된다. 3대 사업 부문 가운데 TV와 가전이 주력인 소비자가전(CE)과 휴대폰·카메라를 맡고 있는 IT·모바일(IM) 부문의 통합을 검토 중이다. 인수와 지분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애널리스트데이 행사에서 임원들의 M&A 확대 발언의 후속이다. 그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금은 보수적이지만 필요하다면 앞으로 공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말했으며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도 “앞으로 인수합병(M&A)으로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까지 연 1~2건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의 인수나 지분 투자는 이후 계속 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 비디오 앱 개발사인 셀비를 비롯해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회사 스마트싱스, 공조전문 유통업체 콰이어트사이드,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업체 프린터온, 소프트웨어업체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대구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고 ‘크리에이티브랩(C-Lab) 벤처창업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지역 벤처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구시와 공동으로 우수 벤처기업에는 인큐베이팅 등 과감한 지원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삼성 관계자는 “성장성이 큰 기업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이후 성장성이 확인되면 삼성이 직접 인수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열린 사장단회의에 참석한 계열사 사장들은 이번 그룹 계열사 매각과 관련해 “아침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모르는 일이다”며 말을 아꼈다.
김준배·이형수·서형석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