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유럽 vs 미국, IT패권 다툼

지난 27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의회가 구글의 검색 서비스를 다른 사업과 분리하라고 의결했다.

이날 EU 의회는 ‘구글의 검색엔진 서비스를 지메일이나 구글어스 등 다른 서비스와 분리·운영할 것을 요구한다’는 동의안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총회에서 찬성 458표, 반대 173표, 기권 23표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구글에 대한 EU 조사
구글에 대한 EU 조사

유럽 검색시장의 90% 이상을 점하는 구글이다. 지난 2010년 역내 경쟁사들로부터 지배력 남용 혐의로 피소 당한 후 지금껏 EU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아왔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이번 동의안 가결로 당장 구글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진 않을 것이며, 실체적 징벌 조치가 단행되기까지도 상당 기간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거세된 IT패권 vs 신IT 제국주의

EU 의회의 이번 조치는 구글 등 미국 IT업체들에 안방을 내준 유럽이 드디어 행동 개시에 나선 것이라고 외신은 의미를 부여했다.

2차 대전 이후 ‘첩보의 시대’에서 유럽은 미국을 상대로 우월 또는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정보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IT로 중무장한 미국에 유럽 각국은 열세에 몰리게 됐다. 그 최전방에는 구글이나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같은 미국 IT업계가 포진했다.

특히 지난해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이 국가기관은 물론, 이들 민간 IT기업까지 동원해 유럽 각국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는 정치·외교적 문제로 비화됐다.

이번 의결이 있기 직전 미국 정부가 EU에 사절단을 보내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EU의 딜레마

이번 EU의 의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세무조사 등 구글에 대한 EU 당국의 제재 강도는 강화될 수 있다. 그럴만한 명분을 확보한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EU는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올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는 구글 지배력 규제 문제와 관련, 50억달러 벌금 부과 가능성을 경고하며 구글에 대해 합의를 종용했다.

대표적인 대미 강경파인 귄터 외팅어 EU 집행위원회 디지털 경제담당 집행위원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구글을 해체하거나 (구글 자산을) 몰수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위배된다”며 공격수위를 낮췄다.

이번 사태에 강경하게 맞선 측은 오히려 구글였다. 미국 당국도 ‘외교적 결례일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 사절단을 파견해 압박을 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EU는 구글 외 대안이 없다. 자국 사업자가 버티고 있는 한국과 달리, 구글은 유럽 검색시장에서 절대적 존재다.

◇미국의 역습

에릭 슈미트 구글 이사회 의장(전 CEO)은 최근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압박 등 유럽의 각종 제재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별로 신경 안쓴다”고 답했다.

그의 답이 현재 유럽의 맹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구글뿐 아니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에 대한 EU의 각종 제재는 독과점 문제를 포함해 세금 포탈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각 쟁점에 비교적 차분한 반응이다. 정작 이들이 신경쓰는 것은 중국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유럽과 달리, 중국은 미국 IT업계를 대체하고도 남을 ‘IT 인해전술’의 뒷받침이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정창덕 강릉영동대 총장은 “국내 IT시장은 네이버와 삼성전자 등이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들이 잘해서라기 보다 상대적 중요도를 감안한 미국 IT기업들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서 한국시장이 후순위로 밀려있기 때문일 뿐”이라며 “그들의 전략 수정에 따라 언제든 총성없는 전장으로 바뀔 수 있는 만큼, 국내용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역내 주요국 검색엔진별 점유율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