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 연일 국회 예산전쟁에 관한 소식이 쏟아진다.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신임이 걸린 문제이니 심각할 수 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보면 시급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예산도 자신과 지역구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하느냐, 아니면 자기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개인 의견은 있지만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예산을 따기 위해 서로 힘겨루기 하는 것과 회사에서 IT예산을 따내는 것과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그 과정과 성격은 비슷하다.
CIO 입장에서는 IT예산 편성이 매우 중요하다. 예산이 동결되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면 CIO가 관리형 임원 역할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IT가 경영 전면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지원부서 역할에 충실하게 되고 그러면 회사 내부에서 CIO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굳이 IT를 담당하는 임원급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도전이 오고, 나아가서는 차라리 IT를 아웃소싱하면 어떠냐?는 근본을 흔드는 도전도 나온다. 다 이런 흔들기가 IT가 경영의 무기로서 앞에서 힘차게 치고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CIO들도 성격 따라 다르다. 어떤 CIO는 ‘일은 무슨 일, 사고만 없으면 됐지’하면서 철저하게 잠수형을 띤다. 대게는 IT에 대한 경험이 없이 현업에서 CIO로 오면 어차피 2~3년 인데 굳이 생소한 분야에서 공부해서 월급쟁이 승부 보자고 할 이유가 없다. 또 CIO가 IT부서의 맨 마지막 자리다 보니 더 올라가려면 다른 부서로 빨리 가야 한다. 혹시 너무 열심히 하면 윗사람이 농담 삼아 IT맨이 취급을 하게 된다. 진급하거나 다른 부서로 가고 싶어 하는 CIO 입장에서는 가슴 철렁한 소리다. 여기서 옷 벗으라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또 IT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CIO들은 전임자와 다르게 이제 제대로 한번 일 좀 해보려 하는 데 윗사람들이 생각만큼 도와주지 않는다. 앞에서는 IT가 매우 중요하고 지금은 IT없이 무슨 경영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말은 그럴 듯 하지만 막상 예산 편성할 때 보면 별로 도와주는 것이 없다.
CIO가 어떤 포지셔닝을 하든 예산 편성에서 밀리거나 필요한 예산이 확보 되지 않으면 우울해 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거 관두라는 소리 아닌가’ 할 정도로 충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CIO들이여,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예산이 동결되거나 심지어 조금 잘리는 상황에도 힘차게 일하고 재미있게 부서를 이끌 방법이 있다.
우선, 지금 IT비용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인건비, 유지보수비, 감가상각비, 통신비가 아마 80%에 육박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놔두고는 다른 비용을 줄일 수 없다. 인건비는 민감한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TO가 아니라 기술 수준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몇명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명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전 유통회사에 근무할때 스스로 IT부서 직원 수를 줄이겠다고 했다. 4명을 줄이고 2명의 인건비는 인센티브로 달라고 했다. 사장은 매우 만족해했다. 항시 직원이 모자라서 일 못한다고 하다가 스스로 인원을 줄이겠다고 하니까 흔쾌히 동의했다. 2명분의 인건비를 갖고 그 당시만해도 파격적 인센티브를 줬다. 못 믿겠으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일 잘하는 직원 불러서 네 옆에 앉은 직원 업무를 네가 맡아 준다면 월급의 50%를 더 주겠다고 제안해보라. 대부분 동의했다. 물론 요즈음 젊은 직원들 중에는 조금 받고 조금 일하겠다는 부류도 있다. 이런 직원들에겐 절대 이런 제안하면 안 된다. 인건비 뿐만이 아니다. 감가상각비도 앞에 사람이 팍팍 쓰고 넘어 오는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지속적인 투자 효과 추적시스템을 만들어 지르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나는 일한 회사마다 모든 IT프로젝트를 동판으로 만들어 부서 복도에 부착했다. 누가 어떤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얼마를 썼는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역사에 기록된다고 하면 좀 조심하지 않겠는가. 예산은 한번 편성되면 그냥 굴러 가는 성향이 있다. 인건비든, 감가상각비든, 유지보수비든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그 효익에 대해 꼼꼼히 따져 보면 줄일 부분이 많다. 예산이 적게 느껴지는 것은 더 이상 줄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줄일 것이냐가 아니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치 신혼 초에 집 사고 차 사면서 월급 적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찬찬히 따져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는 부분을 줄여 알뜰하게 살 줄 알아야 나중에 부자되는 것이다. 국회에서 연일 싸우고 있지만 정말 꼭 써야 하는지 써서 효익이 있는지를 정말 따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