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의 전략 분야로 발전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은 친환경·스마트·융복합 혁신의 3대 혁신에 의한 재편 움직임에 따라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에 오르는 데 성공했지만, 미래 자동차산업이 요구하는 3대 혁신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생존과 도태가 결정되는 중요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 특히 완성차·부품·융합 신산업의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될 자동차산업 발전 방향에서 이를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 육성이 중요한 성공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과 우리나라를 비교할 때 산업생태계 발전 수준과 규모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 독일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폴크스바겐·아우디, 다임러, BMW 등의 완성차 기업과 보쉬, 콘티넨탈 등 부품기업 그리고 베어트란트, MB테크 등의 기술 전문기업이 긴밀히 협력한다. 여기에 프라운호퍼 등 국책연구원과 뮌헨공대 등 대학까지 세계최고 수준의 산학연관 주체들이 말 그대로 드림팀을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한 완성차 기업 의존도가 높고 부품 기업의 규모와 수준이 아직 절대적으로 미흡하며, 국책연구원과 대학의 산업 연계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신기술 개발은 완성차 업체의 방향 제시와 전 산업 생태계의 참여 속에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산업 생태계의 충분한 지원 없이 대부분 완성차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부품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그 부담을 줄일 수도 있었으나, 앞으로는 글로벌 경쟁 기업의 견제 등으로 그리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즉, 이제는 완성차 대기업 중심의 단위 기업 경쟁력이 아니라 산학연관 및 대·중소기업 협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 경쟁력이 글로벌 경쟁의 새로운 핵심 요소가 됐다.
우리나라도 민관이 힘을 모아 독일처럼 완성차, 부품, 기술전문기업, 국책연구원, 대학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생태계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중소·중견기업 중심인 부품 기업의 기술력 제고가 시급하다. 완성차 대기업은 중소·중견 부품기업을 배려가 아닌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지원, 육성해야 한다.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생태계를 보유한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고 신성장동력 육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부품기업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매출액의 최소 3~4% 수준으로 올리고, 모기업은 가격 산정 시 이를 감안해줘야 한다. 부품기업의 기술력 제고는 중장기적으로 완성차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경량화, 전자화, 에너지 효율화 등 공통 기술에 대한 부품기업 간 공동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정부도 R&D 사업 및 정책 연계를 통해 부품기업의 R&D 역량 제고에 힘써야 한다.
최근 자동차 산업이 대기업 중심이라는 편견으로 삭감된 정부 R&D 예산은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부품기업 기술력 제고를 위해 시급히 증액돼야 한다.
둘째 상대적으로 지극히 열악한 기술전문기업 육성이 시급하다. 특정 기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완성차기업과 부품기업을 근접·지원하고 있는 수많은 기술전문기업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성공요소 중 하나다. 기술전문기업은 완성차 기업 지원은 물론이고 중소·중견 부품기업들의 기술력 제고를 위한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지식서비스 산업으로의 발전도 가능하다.
셋째 우리나라의 우수 인력이 집중돼 있는 대학과 국책연구원의 산업 생태계 기여도를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 교수 및 연구원 평가 시스템 개선, 기술 분야별 특화 연구센터 설립 등을 통해 대학과 국책연구원의 산업 협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의 판도는 생태계 간 경쟁이 좌우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주영섭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초빙교수 ysjo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