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36>주역과 경영

[이강태의 IT경영 한수]<36>주역과 경영

최근 인문학 모임에서 주역 강의를 들었다. 5회에 걸쳐 우리나라 주역 관련 최고수라는 분을 모셔 이른바 천기누설에 대해 들었다.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은 주역의 유래나 주역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년 경기가 어떻게 되는지, 주식시장은 어떨지, 우리나라 대기업의 미래가 어떤지, 나는 건강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건지에 더 관심이 많다. 마지막 시간이라 한 분이 질문을 했다. 태어난 사주가 같으면 팔자가 같냐고 물었다. 그러자 강사가 기다렸다는 듯 장황하게 설명했다. 쌍둥이, 이태조, 주원장 등의 사례를 들면서 사주가 같아도 본인의 노력에 따라 운명이 다르게 흐른다고 했다. 자기가 직접 실험한 바에 따르면 78.8 대 22.2란다. 즉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 중 20%의 사람들만이 상향의지를 갖고 노력해 운명을 만들어 나가고, 나머지 80% 사람은 자기 팔자대로 그냥 흘러가듯 순응하며 산다고 했다. 운명의 단어적 해석으로 보면 이리가나 저리가나 다 팔자고 운명이지만 하여튼 주역과 파레토법칙이 만나는 순간이다. 어차피 주역도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모아 통계학적, 확률적으로 해석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뭐 그리 어색한 만남은 아닌 것 같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20:80의 원리를 참 많이 활용했다. 20:80의 원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상품의 20%에서 매출의 80%가, 이익의 80%가 상품의 20%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분석해 보면 비교적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원리가 확장돼 학생의 20%가 교사 시간의 80%, 국민의 20%가 경찰력의 80%, 국민 20%가 국가 세입의 80%, 국민의 20%가 국가 자산의 80% 등으로 응용할 부문이 무궁무진하다. 꼭 불교의 연기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결과에는 항상 원인 행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선 그에 마땅한 원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영에서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원인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파레토의 법칙을 여기에 원용하면 결과의 80%는 20%의 원인 행위에 따른 것이다.

CEO가 되면 갑자기 관심 영역과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CIO를 할 때는 IT부서 운영만 책임지면 됐지만 CEO는 회사 경영 전반을 책임지기 때문에 회사가 곧 나고, 내가 곧 회사라는 시각을 갖게 된다. 이때 자칫 잘못하면 1년 내내 무지 바쁘고 열심히 하는데 연말에 되돌아보면 실적은 별로 내놓을 게 없는 때가 있다. 특히 초보 CEO는 잘해 보겠다는, 잘해 보이겠다는 욕심이 앞서 과욕을 부리는 일이 많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20:80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이 원리를 업무의 우선순위 설정에 적용하는 것이 좋다. 내 경영목표의 80%를 달성하기 위한 20%의 원인 행위를 정의하고 여기에 집중하면 결과적으로 자기고과의 80%는 쉽게 달성할 수 있다. 굳이 100점 맞으려고 아등바등할 필요 없다. 설령 숫자상으로 100점 맞아도 오너나 회장이 절대 100점 안 준다. 자기가 너무 쉬운 목표를 준 게 돼버려서 오히려 기분 나빠한다. 정말 어쩔 수 없이 100점을 안 줄 수 없다고 하면 주긴 주지만 다음해에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오너나 회장 기분 상하게 해서 좋을 일 없다. 과유불급이다. 모든 일에서 80%면 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을 다 잘해서 완벽하게 목표를 달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 회장 보좌 기능이 탄탄한 대기업은 경영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해 보면 안 되는 부분이 숨어 있다. 20%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달성 못하게 돼 있다. 회장 정성평가가 뜻하는 바가 뭐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CEO가 해야 할 업무 20%에 집중하고 나머지 80%의 업무는 과감하게 권한 이양을 해버리면 된다. 그리고 우선순위가 높다고 설정한 업무 20%에 자기 시간의 80%를 쓰도록 해야 한다. CEO를 하다 보면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참석해야 할 회의도 많다. 회사 모든 일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몇 가지에 집중하는 CEO가 돼야 한다. 그러면 밑에 직원들도 좋아 하고 덩달아 성과도 좋다.

CEO를 하다 보면 각종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어떤 문제는 쉽고, 어떤 문제는 어려워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런 때 다시 20:80의 원리를 동원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쉽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주된 원인 행위가 뭔가를 정의해 보면 해결책이 나온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서로 얽혀 있고 각 부서가 관련 있어 보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책이 복잡해 보이는 것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데 20:80의 원리가 매우 유용하다.

20:80 원리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내년 경기가 어떨지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강사에 따르면 내년 경기 무지 안 좋단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 매라!(Fasten Your Seat belt!)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