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세종시 3단계 이전-겉과 속 다른 행정중심도시

# ‘겉’

이달 법제처와 국세청 등 5개 기관 2290여명이 정부세종청사에 입주하면 세종에는 총 36개 중앙행정 및 소속기관이 자리를 잡는다. 근무인원도 1만3000여명으로 늘어난다.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을 필두로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 문화와 산업 발전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산업통상자원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행정기관 대부분이 위치한 명실상부한 최대·최고 행정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슈분석]세종시 3단계 이전-겉과 속 다른 행정중심도시

# ‘속’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A부처 과장은 오늘도 국회 일정 때문에 서울로 올라간다. 의원 보좌관에게 단 20여분 설명하기 위해 왕복 4시간에 이르는 출장을 가야한다. 이 정도는 영상회의로 해결하면 좋겠지만 요원한 얘기다. 또 다른 부처 과장은 세종으로 옮긴 후 현장 방문을 자주하지 못해 고민이 많다. 중소기업 현장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 말그대로 부처들끼리만 어울리는 ‘행정중심도시’에 갇혀있는 느낌이다.

중앙행정기관 3단계 세종시 이전이 이달 완료된다. 2012년 말 1단계, 지난해 말 2단계 이전에 이은 것으로 사실상 중앙행정기관의 이전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세종 1기 시대로 진입한다.

4일 국무조정실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법제처·국민권익위원회·국세청 등 중앙행정기관 3곳과 우정사업본부·한국정책방송원 등 소속기관 2곳이 이달 중 세종시로 이전한다. 직원 수는 약 2300명이다.

현재로서는 3단계 이후 추가 이전 계획이 잡혀있지 않아 3년 여에 걸친 중앙행정기관의 첫 세종 이전 작업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 출범 때부터 논란이 계속된 미래창조과학부와 최근 신설된 국민안전처·인사혁신처 등의 세종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당분간은 청사 확보 등 물리적인 여건 때문이라도 추가 이전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추가 이전 여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되 지금은 1~3단계 이전을 마친 기관의 세종체제 안착을 돕고, 입주 기관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로 지적된다.

세종은 36개 기관, 1만3000여 직원이 근무하는 행정중심도시지만 아직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는 우리나라 행정을 대표하는 부처와 소속기관이 자리 잡으면서 제 1의 행정도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속으로는 관행적인 업무시스템과 수도권과 거리 등으로 인한 문제를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부처가 모였지만 시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협업 문화가 미흡한 것 또한 문제점이다.

정부는 지난 2012년 말 1단계 이전 이후 세종청사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 시행했다. 서울에 남은 중앙행정기관과 다른 지역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영상회의시스템을 적극 도입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영상회의실은 501개에 달한다. 세종과 수도권, 전국 지역과 언제든 연계 가능한 영상회의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도입 초기 영상회의를 낯설어하는 공무원에게 꾸준히 활용을 주문한 결과 지난 상반기 기준 월 평균 영상회의 실적은 2080회로 전년 대비 86%나 증가했다.

원격 근무자를 위한 스마트워크센터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세종청사에 2개소가 설치된 데 이어 이듬해 국회, 과천청사, 서울청사, 서울역에도 마련됐다. 올해는 청와대에도 스마트워크센터가 들어섰다. 상반기 스마트워크센터 이용자는 4만7000여명에 달했다.

정부는 원거리 출장을 줄이고, 외부 출장 시 업무 연속성을 마련하기 위해 영상회의 시스템을 확충하고 대전청사·오송역 등 주요 거점 지역에 스마트워크센터를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영상회의와 스마트워크센터 등 물리적인 인프라가 갖춰진다고 업무 환경이 개선되거나 문화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국회 업무가 생기면 세종청사 공무원은 하루하루가 힘들어진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사안에 대해서는 영상회의나 전화·서면으로 설명을 대신하면 좋겠지만 ‘의원님’들이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다. 모 부처 관계자는 “2시간 걸려 세종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로 올라가서, 2시간 넘게 대기하다가 20~30분 설명하고, 다시 2시간 걸려 세종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고 전했다.

영상회의도 속 모습은 엉성하긴 마찬가지다. 영상회의 실적을 맞추기 위해 필요 없는 영상회의를 하는가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아 영상회의를 마친 후 재차 전화통화로 내용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이다.

스마트워크센터도 모든 지역을 아우르진 못하다보니 많은 공무원이 산하기관 사무실을 빌려쓰거나, 이도 안 되면 주변 커피숍을 전전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것은 세종청사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문제다. 행정중심도시를 표방한만큼 과거 서울·과천청사에 비해 행정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건물과 직원만 세종청사로 옮겨 왔을 뿐 별반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업무 특성상 현장 방문이 필요한 부처에서도 직원들이 외부로 나가기도, 현장 전문가가 세종으로 찾아오기도 어렵다보니 자칫 ‘탁상행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현장 방문차 수시로 자리를 비우면 잦은 출장이 문제가 된다.

부처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대책도 필요하다. 많은 부처가 한자리에 모인 만큼 대면 회의 등 부처 간 커뮤니케이션은 용이해졌지만 ‘협업 문화’ 자체가 정착되지 않다보니 시너지 효과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모 부처 고위공무원은 “세종청사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모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 간 협업을 촉진하고 장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필요해 보인다”며 “3단계 이전 후 이러한 부분에 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