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로 금융 사고가 발생하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해커들이 은행의 전산망을 마비시키는데도 우리가 ICT 강국인가? 중소기업 생산 현장의 3D 근로는 제3국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몫이 됐다. 프랑스 TGV 기관사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KTX 기관사는 근무시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한다. 대기업 반도체, LCD 공장에는 로봇만 보인다. 막대한 투자가 들어가는 공장에 사람이 없다. 비행기가 무인 조종으로 비행하고 착륙하는 시대다. 고속 전철의 기관사 근로조건은 왜 열악한가? 젊은이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꿈을 키울 시간이 없다. ICT 강국에선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997년 터진 IMF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투자 재원이 모자랐던 시기다. 세계금융계 시각으로는 수익성 있는 사업 기회가 안 보였다는 뜻이다. 외환이 갑자기 빠져 나가면서 우리는 외환이 부족한 상태가 됐다. 취업자들의 30%가 실직을 했다. 다행히 실직을 면한 봉급자들의 급료는 미국 달러 기준으로 반토막 났다. 1998년 무역수지 흑자가 400억달러나 되면서 외환 사정은 안정되기 시작했고 외국인 투자가 다시 몰려들어 왔다. 그리고 환율이 정상화되면서 우리 봉급은 서서히 회복했고 실직자들 빼고는 다시 취업했다. 그러는 동안 양극화도 일어났고 ICT 강국에 올랐다. 캐나다, 미국, 일본 보다 빠르게 인터넷에 동영상이 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달러를 밑돌던 시대에 우린 경제가 갑자기 선진국이 된 듯했다.
IMF 구조조정이 10년 지난 후 자본소득은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근로 소득은 줄어들었다. 재벌들은 더 큰 소득을 올렸는데 대부분의 근로자들 소득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양극화가 심해졌다. 취업 경쟁은 극심해졌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머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매겨 근로자에게 나눠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투자는 세금이 없는 지역을 찾아갈 것이고 오히려 IMF 때처럼 일감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이번에는 중국, 일본, 미국, 유럽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환율이 조정되더라도 수출이 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환율도 시장에서 조정된다. WTO·FTA 등으로 개방된 세계경제 속에서 정치적 지렛대(leverage)가 없는 한국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 미국 공장에서 더 큰 수익을 얻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수익이 감소하면 노사협약으로 묶인 한국을 떠난다고 할 것이다. 인터넷에 널리다시피한 고해상도 동영상이 우리에게 일감을 줄 수 있을까?
ICT 환경 속에서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자는 얘기다. 하이테크 벤처도 좋다. 한국형 빌 게이츠도 좋다. 그러나 또 다른 자본가가 탄생한다고 우리 근로자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 러다이트(Ludite) 운동에 불구하고 인류는 스팀엔진을 활용해 근로자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영국의 어린이 노동이 없어졌다. MIT의 브린욜프슨은 제임스 와트의 스팀엔진 대신에 ICT로 제2의 기계시대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정보·통신 그리고 기술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식정보 시대에는 금융의 블랙스완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하게 유기농 농사도 지을 수 있다. 줄기세포 연구도 사이버 공간에서 추진 할 수 있다. 한글로 쓰는 시, 소설, 평론도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 가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생긴다. 소프트웨어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소도 안전하게 반값에 건설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기반시설이 확산 되어있고 ICT 기능이 뛰어난 인력을 갖춘 ICT 강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지식정보 사회 혁명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모든 혁명은 현장의 조그만 불씨에서 일어난다. 카카오 토크의 얘기도 심각히 들어보자. 철도노조의 얘기도 시간을 두고 들어보자. 세계에서 앞서가는 우리 우체국이 민영화를 반대하는 얘기도 들어보자. 스마트 카를 현장에 시연하려면 첨단 ICT가 확산된 나라를 찾아가야 한다. 구글캠퍼스도 유치하자. 한국 사람들의 ICT 숙련도가 필요한 자본도 유치하자. 한국의 ICT 능력을 쫓아 몰려오는 해외 자본을 규제할 이유가 없다. 언론에는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에 공개돼 손정의 회장 등 투자가가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는 사실만 보도된다. 이 중국 회사에는 고소득 ICT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크게 늘고 있다. 불씨를 살리는 것은 규제에 능숙한 정부가 아니라 자유경쟁에 익숙한 시장이다. 창조경제의 불가사이는 시장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설명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배순훈 S&T중공업 회장 soonhoonb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