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메이커 활동을 창업과 많이 연결하려 하는데,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닙니다. 창업은 메이커 활동으로 따라오는 여러 가지 부수적 효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순수하게 만드는 활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는 현박은 메이커 활동과 창업을 연계하는 국내의 움직임을 아쉬워했다. 메이커 활동은 다양한 쪽으로 영향을 미치고, 발전할 수 있는데 단지 창업으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쉽다는 설명이다.
현박 작가는 “사과나무를 심으면 열린 사과를 먹고, 사과로 잼이나 다른 가공식품을 만들고, 목재로 쓸 수도 있는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면서 “메이커를 창업과 연결하는 것은 사과나무 용도를 한가지로만 쓰겠다는 것으로 다른 부수적인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메이커 운동이 여러 장점을 가질 수 있는데 시제품을 만드는 용도에 그친다면 파급력이 크지 않다”며 “시제품은 제품 주기가 있어서 시제품을 만들어 제품화하면 한동안 창의력을 파생시킬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으로 된다”고 덧붙였다.
필요한 경우 창업을 하더라도, 메이커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 의미있다는 설명이다.
작가 개인의 이력만 봐도 만들기에 대한 그의 열망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 디자인을 직접 제품으로 만들고, 특히 CNC선반을 직접 개발해 사용했다. 이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 보조공학센터에서 맞춤형 보조기기 제작일을 하는 계기가 됐다. 장애인에게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주는 것도 보람이 있었지만, 회사의 문화 차이와 궁극적으로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으로 회사를 나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활동이 시작됐다. 3D프린터의 단점을 특징으로 보고 조명에 새로운 조형을 더하는 작업을 했고, 알고리즘을 통해 누구나 쉽게 디자인 해볼 수 있는 플랫폼도 개발했다.
알고리즘 모델링을 이용한 디자인 플랫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면화병제작소’를 통해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은 아이패드로 크기나 높이, 휘어진 정도 등 다양한 조건을 조절해 자신만의 화병을 만들어볼 수 있다.
그가 요즘 관심을 두는 분야는 디자인과 제조업의 관계에 대한 연구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대량 맞춤을 실험하고 싶다고 했다.
현박 작가는 “현재 알고리즘이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구글의 맞춤형 광고, 주식매매, 빅데이터 분석이 모두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지는데, 인간의 제조업 혁명은 가장 늦게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이메일이나 소프트웨어 등에서 인간도 알고리즘을 쓰지만, 제조업과 결합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메이커로서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지원이 늘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강연, 교육, 전시 등으로 번 돈을 메이커 활동을 위한 재원으로 쓴다.
그는 “해외에는 기업이나 비영리단체에서 메이커를 위한 지원금, 작업공간 등을 지원하는 제도가 많다”며 “국내에는 기업의 지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료비를 벌기 위한 활동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