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한서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의미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 말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현장에 나가보지 않고 탁상공론에 매달리게 되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고사성어가 과학기술 생명현상 연구 분야에도 해당되는데 생체 혹은 세포 수준의 연구를 간접적인 데이터가 아닌 직접 관찰하고 영상을 통해 결과를 확인하는 새로운 연구문화가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분자영상기술이다.
분자영상은 첨단영상기술과 분자세포생물학이 접목된 것에서 시작해 생체 내에서 세포·면역·조직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분자 또는 세포 수준에서 영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분자영상기술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10년 전인 2003년 이미 세계 10대 선도기술로 선정했다.
지금 급속한 삶의 질이 향상되는 시기에 의학적 패러다임이 질병의 치료 위주에서 조기 진단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진단분야에서도 단순 분석보다는 조기 진단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분자영상기술을 활용하면 연구대상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세포·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영상으로 직접 보여줄 수 있어 기존 영상기술이 주로 제공해온 해부학적 정보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정보를 제공한다.
분자영상기술은 크게 빛을 이용하는 광학영상, 방사선을 이용하는 핵의학영상, 원자핵 자기공명신호를 이용하는 자기공명영상 그리고 엑스선 정보를 영상으로 이용하는 컴퓨터단층촬영영상 등이 있다.
최근엔 자기공명과 광학영상, 자기공명과 핵의학영상, 광학과 핵의학영상 등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융합분자영상기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의 하버드·스탠퍼드대,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등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이 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융합 분자영상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는 원하는 분자 또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표적화해 분자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통해 조직 및 세포 소기관 내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진단 및 치료과정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맞춤형 치료법을 가능하게 해준다.
과학기술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알려진 뇌과학 분야에서도 비침습적인 분자영상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세계적으로 연구개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그만큼 분자영상기술이 중요하게 이용될 것이라는 방증이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분자영상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알아 예산을 집중 투자하고 중장기 마스터 플랜에 따라 이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2년 분자영상기술을 미래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무한 잠재력을 가진 핵심분야로 보고 과학기술발전 중장기로드맵에 분자이미징에 관한 국가적 공동 활용시설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분자영상기술은 미래 선도 기술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할 것이다.
정부의 투자와 함께 관련 전문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현재 관련 인력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일부 보유하고 있을 뿐 향후에는 절대다수가 부족할 수 있다.
분자영상기술이 우주는 물론이고 초미세 분야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을 뒷받침하는 시대가 됐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khchung@kb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