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클라우드 공룡`의 공습이 시작됐다

#국내 클라우드 업체인 A사 대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얼마 전 그는 아마존으로부터 사업 제휴를 제안받았다. 아마존은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다. 아마존과 협력하면 영업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도움이 돼 사업이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그간 자체 기술로 클라우드 사업을 진행해왔던 터라 무턱대로 손을 잡을 수만은 없다. 아마존과 제휴하면 회사의 정체성과 근간이 아마존 중심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협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아마존과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인 데, 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슈분석]`클라우드 공룡`의 공습이 시작됐다

국내 클라우드 업계에 아마존 공습경보가 내렸다. 단순히 시장 수요를 잠식하는 단계를 넘어 국내 클라우드 산업 자체가 아마존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아마존 공습 시작됐다

아마존은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서 대규모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클라우드 업계의 흐름과 비전을 공유하는 이날 행사에는 국내에서만 1만명 이상이 찾아 아마존 행보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사실상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클라우드 업체들도 행사에 참가해 동향을 살폈다.

국내 업계가 아마존 행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 아마존의 한국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지난 2012년 5월 클라우드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법인(아마존웹서비스코리아)을 설립했다. 지난 9월에는 KT와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통신사와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공간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IDC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들이 구축되는 곳이다. 아마존이 IDC 임대 계약을 했다는 것은 자체 인프라를 국내 두겠다는 의미다. 아마존은 장비 구축을 마무리하고 가동 시점만 남겨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클라우드 서비스 품질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아마존은 그간 해외 데이터센터들을 통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지연시간(레이턴시) 문제가 단점으로 부상했다. 국내 인프라를 두게 되면 지연시간 문제가 해소돼 향상된 서비스로 더 많은 고객사를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시장 잠식이 더욱 빨라지는 셈이다. 아마존은 이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형 제조업체는 물론 콘텐츠나 게임업체들까지 고객사로 확보하며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는 상태. 새로운 인프라를 통해 보다 적극적인 고객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아마존, 판을 흔들다

업계가 아마존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아마존 공습이 강화되면 시장잠식은 물론이고 국내 산업계가 아마존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아마존발 지각변동으로 특히, 국내 생태계 자체가 아마존에 흡수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업계는 이미 신호탄이 쏘아졌다고 보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국호스트웨이와 아마존의 협력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호스트웨이는 그동안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 10월 아마존과의 협력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아마존과의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한 생존과 성장을 선택한 것이다.

아마존은 호스트웨이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파트너 제안을 하고 있다. A사 역시 같은 사례며 호스팅 업체인 B사도 심각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의 경쟁력과 인지도 등을 감안할 때 협력을 외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아마존은 이미 10여개 국내 기업을 파트너로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업계의 우려는 아마존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국내 기업들의 자생력이 취약해진다는 점으로 모아진다.

익명을 요구한 클라우드 업체 관계자는 “아마존과 손을 잡으면 시장을 공략하는 데 유리하겠지만 재판매 마진이 최대 7%를 넘지 않는 등 수익이 적어 독자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아마존을 무시할 수 없다. 아마존과 협력을 통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기술 습득을 하지 않으면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실제로 아마존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다국적 기업들도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며 공세를 예고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은 갈수록 더욱 높은 파고를 견디거나 뛰어 넘어야 한다.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는 통신사, 포털 등이 서비스를 제공 중이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격차가 상당하다. 올해 국내 클라우드 시장 규모는 약 8억9000만달러로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규모(693억1000만달러)의 1.3%에 불과하다. 시장 규모도 작은 데다 미국과의 기술격차도 1.52년 정도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들의 하도급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란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민영기 클라우드산업협회 사무국장은 “2018년 클라우드가 세계 데이터센터 트래픽의 76%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클라우드 이슈는 단순한 산업을 넘어 데이터 안보의 문제와도 맞닿을 수 있다”며 “글로벌 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협업 생태계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