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는 연평균 13%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유망한 산업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IPTV, N스크린 등 날로 늘어나는 콘텐츠 수와 함께 콘텐츠 유통에 대한 정확한 모니터링이 전제돼야만 불법 콘텐츠 유통을 막고 융·복합 콘텐츠 산업의 창의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콘텐츠산업의 투명하고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선 유통되는 디지털콘텐츠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도록 각 콘텐츠에 고유한 식별자를 붙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식별자를 콘텐츠의 주민번호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고유하고 영속적인 아이디를 각 콘텐츠에 부여하면 검색이 용이하게 되고, 유통되는 모습과 이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창의적인 콘텐츠 융·복합 및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투명한 개방형 플랫폼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1997년 디지털콘텐츠 식별체계인 DOI(Digital Object Identifier)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2005년부터 UCI(Universal Content Identifier)를 개발해 보급 중이다. UCI는 음원, 보고서, 학술논문, 인물, 방송, 전자출판 등에 1억7000만건 이상 부여돼 활용되고 있다.
UCI 운영주체가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을 거쳐 2012년 한국저작권위원회로 변경되면서 콘텐츠 유통현황 파악 및 이와 관련된 저작권 정보의 통합관리가 가능해짐에 따라 실질적인 콘텐츠 과금과 정산 및 식별자의 활용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 학술논문은 식별자의 필요성과 활용성이 매우 큰 분야다. 발표된 학술논문은 고유성과 영속성을 갖고 있으며, 참고문헌과 인용을 위해 다른 논문에 대한 식별 또는 연계가 필요하다. 또 우수 논문 평가를 위한 논문의 피인용지수 산정 및 등급을 매기는 데에도 식별자가 필요하다. 특히 논문은 논문 작성자, 교수, 학생, 연구원, 대학, 연구기관, 일반인까지 활용범위가 매우 넓고 사회의 지적 기반이 되므로 파급효과와 영향력 또한 크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술논문은 현재 8310개 발행 기관과 4879종의 학술지에서 105만5101건을 발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우리나라 학회지의 논문들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는 KCI라는 인덱스를 운영하면서 ‘등재지’를 선정하고 있다. 등재지는 학계에서 논문의 질적 우수성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2009년부터 UCI 등록관리기관 역할을 하고 있고 DOI 등록기관도 겸하고 있다. 그러나 학술지 지원사업에서 DOI 발급 여부에 따라 가점을 부여하고 있으나, 정작 한국 표준인 UCI에는 가점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다수의 학회지들이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해 게재 논문에 DOI를 부착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며 UCI 활용은 정체돼 있다.
그런데 DOI는 등록기관에 가입할 때와 콘텐츠에 식별자를 부여받을 때 해외기관에 일정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즉, DOI가 우리나라 학술논문의 식별자로 정착된다면 막대한 금액의 국부유출이 매년 발생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개발한 UCI가 안방에서 외면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학술논문의 UCI 활용이 높아진다면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좋은 사례가 될 뿐만 아니라, 향후 콘텐츠의 해외 수출 및 활용과 함께 UCI의 국제 표준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과 성능 면에서 UCI와 DOI는 서로 비등하며 UCI는 타 식별체계와 호환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굳이 DOI를 학술논문의 식별체계로 고정할 이유도 없다. DOI와 UCI는 호환성을 유지하면 되고, 해외 연계부분은 한국연구재단이 중심이 돼 DOI와 UCI의 게이트웨이를 운영하면 될 것이다.
또 우리나라 학술논문이 거의 UCI로 표준화된다면 DOI의 독과점에 대한 대체재로서 견제수단이 되고 향후 국제적 연계부분에서 상호인정 및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DOI의 학술지 시장 잠식을 막고 UCI가 국가식별체계 표준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추전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한국연구재단과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전략적 협의체를 구성해 가능성을 확인하고 공식적인 추진체계와 협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한국연구재단에서 UCI-DOI 게이트웨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 조성돼야 한다. 셋째, 한국연구재단 KCI 인용지수 산정 시 UCI 식별체계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지원사업에 UCI 식별체계를 평가 항목에 넣는 것을 고려하고 단계적으로 KCI 등재지 평가 시 변별력을 높이는 데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UCI의 안정적인 운영과 국제표준화도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근래 공공데이터 개방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환경에서 식별자의 필요성과 활용성도 점차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식 콘텐츠의 대표 격인 학술논문의 중요성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창의적 융합 콘텐츠 발현의 인프라인 식별체계의 확립단계에서 ICT 강국의 자존심을 극신 표준의 활용으로 보여줄 때다.
임규건 한양대 경영대 교수 gglim@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