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버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제갈량이 죽은 후 위나라의 군사 사마의가 촉군을 공격했는데 이때 촉군은 죽은 제갈량을 수레에 앉혀 살아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 줄행랑을 쳐 후세에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사마의의 조건반사적 도주를 비웃기에는 마음에 좀 걸리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탔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 본 적이 있었다. 오전 10시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탄 차량에 앉고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묵묵히 손안의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분명 친구들이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함께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승객들이 옷만 허름하게 입고 있다면 분명 ‘좀비’로 가득한 지하철이 아닌가. 소름이 오싹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파괴한(?)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잡스가 기획한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를 이토록 철저하게 그의 의도대로 바꿔버렸다. 우리는 이미 죽어 관 속에 있는 잡스의 거미줄 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이다.
잡스가 만들어 낸 제품은 창의적이고, 전 세계의 ‘애플빠’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정작 신화를 만든 잡스는 사회적 윤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장애인 주차장에 버젓이 주차하고 자동차 번호판을 달고 다니지 않았다. 치명적인 금지 마약인 LSD를 상습복용했으며, 자신의 여자친구가 임신했을 때 ‘나는 무정자증이라 임신이 안 된다’고 우기기도 했다. 3년 후에 자신의 아이임을 겨우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자 친구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뒤였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는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지만 그의 삶을 되짚어보면 ‘stay free’라는 한마디를 덧붙여야 할 것이다. 그는 자유분방을 넘어 자유방만하게 살았다. 이런 그가 한국에 살았다면 아마 전과 20범은 족히 됐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만들어 사람들이 쉽게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게 했으니 음란물 유포 방조죄까지 포함해서.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와 애플을 이런 문제로 규제하지 않았다.
카카오 이석우 대표가 음란물 유포 방조로 입건됐다. 사실 방조죄는 카카오뿐 아니라 대한민국 인터넷 기업이라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말은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이 죄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동일하게 음란물이 돌아다니는 미국의 구글이나 일본의 야후, 중국의 텐센트는 방조죄로 묶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최대 위기다. 온라인게임은 중국에 밀린 지 오래고, 스마트폰 게임 주도권은 구글이나 애플, 그리고 텐센트에 넘어갔다. 이른바 게임중독법으로 개발자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이런 우리에게 그나마 카카오나 라인 같은 국산 플랫폼이 있다는 것은 천우신조다.
혹자는 이석우 대표의 검찰에 대한 도전이 괘씸죄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규제 하나하나가 개발자의 창의성을 파괴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콘텐츠의 기본 철학은 자유다.
칼이 강도나 살인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방용 칼 제조업자에게 방조죄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이 기획할 때 법률이나 연령 등급을 고민해서는 안 된다. 스티브 잡스의 말 그대로 ‘stay foolish, stay hungry’하면 된다. 대한민국이 창조경제를 주창하면서 창의성을 죽이는 것은 난센스 아닌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