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일을 순서에 맞게 처리하지 않으면 그르치기 쉽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사용 목적에 맞는 설계가 필요하고, 터를 잘 닦아야 한다. 논문이나 보고서를 쓸 때도 그렇다. 서론, 본론, 결론의 순서대로 전개해 나가야 필요한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쏟아지는 각종 연구개발(R&D)사업도 마찬가지다. 일의 순서대로 하자면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 어떤 효과를 가져 올지, 어떤 과정으로 추진할 지를 설계하는 것이 먼저다. 이를 ‘기획’이라고 한다.
사업 완료 후에는 이 사업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뒀고, 그 결과물로는 향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평가’라고 한다.
R&D사업은 이렇게 ‘기획’을 시작으로 실제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평가’로 마무리된다.
기획은 성공적인 사업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지도와 같다. 또한 공정한 평가는 사업 과정의 잘잘못을 파악하고, 앞으로 더 좋은 사업을 기획해 추진하게끔 만드는 근거로 작용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R&D사업은 이러한 기획과 평가에 대한 인식 수준이 여전히 낮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개별 R&D사업에서 기획과 평가에 사용하는 예산이 없거나 미미하다.
그렇다 보니 일단 사업부터 따고 보자는 ‘장밋빛 기획’이 넘쳐나고, 사업 완료 후에는 사장될 특허 몇 건으로 평가를 마무리해 버린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에 맞는 신규 과제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반복되고 있는 부실한 사업 기획과 평가의 토대 위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성공적인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R&D사업에 있어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획과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고 또 짰다. 이제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정책적 변화는 더 이상 의미없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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