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만들고 운영하기 좋은 생태계를 구축해 유럽의 새로운 스타트업 메카로 거듭나는 곳이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도시별로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은 과거에 동과 서를 나누는 베를린 장벽이 있는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에는 신흥 IT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유망 IT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 등이 모여 ‘실리콘알리(Silicon Allee)’로 불리며 유럽의 IT 허브로 부상했다.
독일 총리부터 정부, 시 당국 등이 나서 베를린 육성에 힘썼다. 과거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업가정신을 육성하는 데 정부가 나서 지원을 하겠다”며 창업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독일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필리프 뢰슬러 독일 경제부 장관은 창업하기 좋은 문화를 배우려 직접 미국 실리콘밸리에 다녀오기도 했다.
독일이 IT 창업 붐을 일으키고자 노력한 결과 베를린은 정부의 지원과 함께 고학력 인재가 풍부한 점과 값싼 부동산 가격, 저렴한 물가 등을 장점으로 갖추게 됐다. 기업을 시작하기에 필수인 요소를 두루 갖추며 창업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베를린은 지난 2013년 구글의 지원을 받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에 창고를 개조한 벤처센터 ‘더팩토리’를 세우는 등 창업 인프라를 확대했다. 지난해까지 2500개 이상의 IT 스타트업이 둥지를 틀었다. 다른 유럽 지역의 IT 스타트업 수요를 끌어 모으며 음악 스트리밍 업체 ‘사운드 클라우드’나 파이어폭스 인터넷 브라우저로 유명한 ‘모질라’ 등 유망 기업도 찾아들었다. 결과적으로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IT 도시가 됐다.
스타트업이 모이자 벤처 자금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 도이치 스타트업의 딜모니터에 따르면 독일 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한 펀딩의 절반 가까이가 베를린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베를린에 기반을 둔 과학자 지식 공유 서비스 ‘리서치게이트’에 3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사 세콰이어캐피탈도 1900만달러를 ‘6분더킨더’에 투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창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독일 대표 IT 기업 SAP의 공동창업자 하소 플래트는 사재를 털어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 기업가 양성 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실리콘밸리만이 답은 아니다”며 벤처 업계를 후원하고 있다.
독일에는 통일 이후 대표적인 글로벌 과학기술도시로 성장한 드레스덴도 있다. 독일은 구 동독지역의 경제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으로 도시 전체를 탈바꿈시켰다. 드레스덴의 전체 기업체 수는 2만5000여개 정도로 매년 1000만명 정도가 찾는 도시가 됐다.
드레스덴이 속한 독일 작센 주 정부는 지난 1991년 이후 대규모 조세 특혜를 부여하며 첨단산업 기업의 설립을 유도했다. 2000년에는 도시재구조화 전략을 수립해 일부 철거된 주택지역을 정비하고 비즈니스와 관광산업이 결합된 도시로 탈바꿈시키며 비즈니스에 적합하도록 만들었다.
드레스덴은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정부와 기업, 관계 기관의 긴밀한 협조로 창업하기 좋은 생태계를 만들었다. 독일의 손꼽히는 유명 공과대학인 드레스덴 공대를 비롯해 기초과학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소, 다국적 대기업과 관련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모였다.
우수한 연구 인력을 대거 확보한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드레스덴 공대와 함께 단일기관으로 세계 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막스플랑크 연구협회, 독일 내 최다 특허를 보유한 프라운호퍼 연구협회 등이 위치해 기업에 우수한 인재를 공급할 수 있었다.
각 업체들은 연구개발(R&D)부터 신제품 제작,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시스템화해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을 다시 연구 활동에 투자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했다.
<드레스덴 현황 / 자료: 드레스덴 시청>
<독일 주요 도시 하이테크 분야 종사자 비율 / 자료: 유럽 통계청>
김창욱기자 monocl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