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SDN 핵심가치는 `공개표준`이다

[전문가 기고]SDN 핵심가치는 `공개표준`이다

지난 2012년 즈음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SDN)’가 한국 시장에 소개된 후 2년이 흘렀다. 이 기술이 처음 언급됐을 때 까마득한 미래 이야기로 치부됐다. 이제 SDN은 세계적으로 오래 정체돼온 네트워크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혁신시킬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SDN은 표면적으로는 컨트롤레이어를 중앙 집중화해 네트워크의 유연성, 민첩성, 가시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프트웨어로 네트워크를 제어하는 것은 관리의 효율성은 물론이고 기업 운영비나 설비 투자 절감 효과가 높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성장세가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통신사업자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상용화 사례가 생겨나는 등 이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IDC는 우리나라 SDN 시장이 오는 2018년 1527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시장과 기술의 흐름이 이렇다 보니, 기존 네트워크 산업을 좌지우지하던 굴지의 벤더들이 차세대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앞다퉈 SDN 관련 솔루션과 전략을 내놓고 있다. 이제 어느 누구도 SDN이 내일의 네트워크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본격적인 개화와 경쟁이 목전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DN으로의 전환을 비즈니스적인 언어로 해석하려 할 때는 좀 더 장기적 포석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 변화가 누구에게 가장 이득이 될지 고민해봐야 한다.

SDN은 새로운 기술적 변화를 넘어 네트워크 산업의 생태지도를 바꾸는 것을 통해 새로운 가치사슬을 엮어낼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DN 산업을 바라볼 때, 네트워크 장비에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통 흐름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각각에 적합한 프로세스를 분리, 정립하는 것을 통해 소수의 독점적 사업자에게 점유돼온 기존 네트워크 시장을 개편하겠다는 의도를 읽어야 한다.

이러한 의식적 기반을 전제하지 않은 SDN으로의 전환은 절대로 혁신적 방향이 될 수 없다. 좋게 봐줘도 오래된 장비를 새로운 기술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네트워크의 소유권은 여전히 나의 것이 아닌 채로 말이다.

설정이 간편하다는 이유로 특정 벤더에 종속적인 프로토콜을 라우팅 환경에 도입했던 우리나라 몇몇 대기업들은 뒤늦게 공개표준으로의 환경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누적돼온 익숙함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동안 놓쳐온 비용절감과 솔루션 주도권 확보라는 기회비용은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이러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이미 기존 장비를 단순 대체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솔루션을 결합한 새로운 아키텍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통신사를 필두로 SDN을 도입해 자신이 직접 네트워크 경로를 제어하고 원하는 기능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하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네트워크 ‘소유권’에 대한 헤게모니를 자사로 귀속시켜 새로운 가치사슬을 형성해 내고, 이를 통한 네트워크 확장성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다른 모든 IT분야가 같은 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결국 네트워크도 최종사용자의 판단에 의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는 ‘공개표준’의 길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SDN의 가장 핵심적 가치 중 하나가 바로 ‘공개표준’을 통한 네트워크 소유권 확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류기훈 나임네트웍스 대표 victor@naimnetwor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