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은 명료했다. 정보통신 분야는 잘 모른다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콕콕 짚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정보통신부 해체는 잘못한 일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해체에 반대했어요. 요즘 역사의 간지(奸智)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4년 12월 24일.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성탄절 전날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이날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했다. 정보통신부는 한국의 독창적 정부조직으로 미래 정보화에 대비하기 위한 야심찬 포석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며 미래를 향해 질주했고 ‘ICT 강국·인터넷 강국’이란 신화를 창조했다.
정보통신부 확대 개편에는 비화가 많다. 정보통신부 개편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박관용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극비리에 젊은 엘리트들로 실무팀을 구성해 개편안을 만들었다.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이 정보통신부 개편의 산파역이라면 박 전 실장은 숨은 주역이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보통신부는 14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김영삼, 노무현 전·현직 대통령이 정보통신부 폐지에 반대했지만 이명박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국가정보화 20주년을 맞아 17일 박관용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
그는 “그 작업(정통부 개편)이 한국이 ‘ICT 강국’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비서실장 시절,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회고했다. 그가 만든 개편안이 국가발전에 신통력을 발휘할지 당시는 그도 몰랐던 것이다.
박 전 실장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개편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문민정부가 개편한 정보통신부를 이명박정부가 폐지한 일은 잘못된 교만”이라고 지적했다.
의회 민주주의자인 박 전 실장은 6선 의원으로 1993년 김영삼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2002년 사상 처음 야당 출신 국회의장으로 일했다.
-비서실장이 왜 실무팀을 만들어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들었나.
“개발시대 정부조직은 개방화와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보통신부 확대 개편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확신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인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려면 부처별로 흩어진 정보화 관련 업무를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동서 교수(작고)와 김광웅 교수(현 명지전문대학 총장)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대통령 자문기구로 행정쇄신위원회를 구성해 1·2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3차 개편안을 마련했으나 김 대통령은 “다른 일을 하나도 못 하겠다”며 조직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김 대통령은 모 경제신문 창간특별회견에서도 “부처 간 통폐합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정보통신부 개편은 물 건너갈 상황이었다.
박 전 실장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극비리에 비서실장 직속으로 실무팀을 꾸렸다.
“당시 비서실장 보좌관인 김광림 국장(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김종민 청와대 행정비서관(문화체육부 장관 역임), 김정국 경제비서관(보고경제연구원 회장 역임), 김동연 비서관(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역임) 등으로 팀을 짰다. 이들에게 철저한 보안을 당부하고 사전에 이들의 사표를 받았다. 행정쇄신위가 마련한 안을 넘겨받아 비서실장 공관 2층 작은 회의실에서 매일 또는 수시로 모여 안을 만들었다. 경제 분야와 관련해서는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현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교장) 등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
이 일은 김 대통령에게도 철저히 비밀로 했다. 그는 “김 대통령에게 이 일을 보고했으면 그 분 성격에 ‘쓸데없는 일 한다’며 소리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11월 김 대통령이 9박 10일간의 아태 순방 및 아태경제협력기구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귀국했다.
박 실장은 “대통령들은 두 가지를 통해 배운다. 하나는 자기 실패에서 배우고 다른 하나는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에서 배운다”고 했다.
김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 대통령은 박 실장에게 “이번에 해외에 나가 정상들과 만나면서 많이 배웠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세계화를 말하던데”라고 덧붙였다. 박 실장은 정부조직개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는 조직개편의 당위를 설명했다.
“‘지금 정부조직으로 과연 세계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새롭게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다. 김 대통령이 ‘박 실장은 자꾸 조직개편을 하자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하자는 거요. 무슨 복안이라도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제가 극비리에 준비해 놓은 개편안이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김 대통령이 깜짝 놀라며 ‘그래요, 어디 봅시다’ 하시기에 비밀리에 만든 조직개편안을 드렸다.”
김 대통령은 그 개편안을 가지고 관저로 퇴근했다. 평소 문서를 가지고 관저로 가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박 실장은 김기수 당시 수행실장에게 이를 확인했더니 “대통령이 관저로 문서를 가지고 갔다”고 대답했다. 박 실장은 “김 대통령이 개편 내용에 대해 몇 사람의 의견을 물어 본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하루 이틀 후 김 대통령은 개편안을 돌려주면서 “좋다, 정부조직을 개편하자”고 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했는데.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한 것은 김 대통령이 처음이다. 정보화를 해야 세계화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정보통신부를 폐지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장은?
“정보통신부 해체에 반대했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박재완 팀장(현 성균관대 교수)이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드는데 정보통신부를 없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건 아니다’ 싶어 김 전 대통령에게 ‘문민정부에서 어렵게 만든 정보통신부를 이 정부에서 없앤다고 하는데 잘못된 일입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게 ‘ICT 강국’인데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를 없애서는 안 됩니다. 이 당선인에게 한 번 말씀하시지요’라고 말씀드렸다. 2008년도 1월 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팔순 축하연이 열렸다. 그 자리에 이 당선인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 당선인에게 “정보통신부는 중요한 부처입니다. 그걸 폐지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건 안 됩니다”라고 했다. 이 당선인이 “예, 예” 하는데 보기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기업에도 강소기업(强小企業)이 있듯이 한국도 세계에 자랑하는 부처가 필요하다.”
당시 윤동윤 전 장관을 비롯한 전직 장차관들이 국회와 대통령직인수위를 방문해 반대 입장을 전달하고 항의했지만 정보통신부 폐지를 막지 못했다.
박 전 실장은 “정부가 디지털강국 구현을 위해 정보통신부와 같은 ICT 전담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행정 전문가는 아니지만 장점이 많고 일 잘하는 부처가 있다면 더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이 잘하는 ICT 분야는 더 빨리 발전시켜 한국이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통신부와 같은 독임제 부처는 필요하다.”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개편을 하는데?
“그동안 대통령 후보가 되면 예외 없이 정부조직개편을 하겠다고 하는데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정부 조직기능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 더 잘할 수 있도록 보완하면 된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기들 주장만 옳다고 생각해 조직개편의 칼날을 멋대로 휘둘렀다. 잘못된 교만이다. 5년마다 관행처럼 되풀이하는 개편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
-문민정부에서 추진한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사업은.
“문민정부 시절 대북사업과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묘향산 초대소에서 사망하지 않았다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방북 시 머물 별장과 침실을 김 주석이 직접 점검했다. 당시 금강산 관광사업 등 대북사업과 관련해서는 고합그룹 장치혁 회장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장 회장은 북한과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고 있던 재미교포 사업가인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과도 만나 미국에서 관광유람선을 구입하려고 했다. 금강산 개발 타당성 조사도 했고 관광사업과 관련해 김일성 주석의 서명도 받아왔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금강산 사업은 현대그룹으로 넘어갔다.”
-요즘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인간은 누구나 한계가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인사를 잘해야 한다. 대통령의 약점을 잘 알고 이를 보완해 주는 보좌진이 필요하다. 보좌 없는 ‘나홀로 국정’은 실패한다.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 같은 인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재임 시 40년 지기인 김윤도 변호사(작고)와 자주 만났다. 비선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이회창씨(한나라당 총재 역임)의 국무총리 임명을 적극 반대했지만 김 대통령은 이런 의견을 참고만 했을 뿐 이회창씨를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대통령은 국회의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 입법부 협조가 없으면 대통령이 국정을 순탄하게 운영할 수 없다. 국회와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국회 의장=정계 은퇴’라는 관례를 만들어 후임 국회의장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는데.
“후임 의장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기에 ‘방법이 있다. 대통령에 출마하면 된다’고 했더니 허허 웃더군.”
-좌우명은.
“논어에 나오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인데 선친이 강조하신 글이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을 가훈으로 삼아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박 전 실장은 동아대 법정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1981년 11대 국회에 입성해 16대까지 6선을 기록했다. 이어 1985년 남북국회회담 대표와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1996년 국회 통일외무위원장을 역임했다. 신한국당 사무총장과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을 거쳐 2002년 제16대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를 명예롭게 은퇴했다. 현재 동아대 정치행정학부 석좌교수 겸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으로 대학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대북문제 전문가로 통일문제와 국제문제에 조예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