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든 체크카드든 결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카드를 손으로 잡고 옆으로 쭉 긁는 방식이 있고, 현금 자동 지급기(ATM)처럼 카드를 집어넣어 읽히는 방식이다. 전자는 카드 뒷면에 있는 검정 또는 흰색의 띠를 카드 리더에 읽히는 것이고 후자는 카드 앞면에 있는 IC칩을 읽히는 것이다. 카드는 개인 신용을 근거로 발급된 것이기 때문에 카드를 사용할 때 가입자 본인인지 식별하고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본인 인식 방법에서 가장 큰 차이는 마그네틱(MS)은 서명으로 확인하고 IC는 비밀번호로 확인하는 것이다. 비대면 채널인 온라인 쇼핑몰은 공인인증서, 카드번호, 유효기간, CVC 값 등으로 카드 발급자와 결제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마그네틱 카드는 카드 뒷면에 가로로 붙어 있는 검정 띠를 말한다. 문제는 이 마그네틱의 기술이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왔고 신용카드에 쓰이기 시작한 것이 1971년이다. 햇수로 보면 43년이나 됐다. 출생연도를 안 따지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지금 카세트테이프를 찾기 힘든 것만 보면 금방 이해된다. 이미 음악이나 영화분야는 자기테이프에서 CD를 거쳐 컴퓨터 칩으로 옮겨 갔다. 당연히 음질도 좋고 관리도 편하다. MS기술 자체가 단순하고 오래되고 시장에서 대부분 퇴출됐다. 문제는 너무 쉽게 복사가 된다는 점이다. 시중에서 몇십만원만 주면 복사기를 구입할 수 있고, 카드를 훔치거나 빌려서 복사카드를 만들면 바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실제 해킹기술자들이 개인정보를 훔치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정보를 활용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함인데 구체적으로는 복사 카드를 만들어 ‘카드깡’이나 게임머니를 통해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신용카드 도난, 분실, 부정 사용 등으로 연간 100억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IC칩 카드는 마그네틱 카드에 비해 복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마그네틱 카드에서 IC 칩 카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고 우리나라도 IC칩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이다. 2014년 2월에 ATM에서 현금인출은 IC칩 카드만 가능하게 됐으며, 2016년 1월부터는 모든 가맹점에서 IC칩 카드만 사용하도록 돼 있다. IC칩 카드로의 전환을 주도한 관련 단체는 카드사들로 부터 1000억원 규모 기금을 갹출받아 65만 영세 가맹점에 단말기 교체 작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갹출 때부터 말이 많았다. 전체 신용카드 가치 사슬에서 밴(VAN)사와 결제대행(PG)사는 빠지고 왜 카드사만 전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각 카드사의 비용 분담을 관련 협회비 분담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 등의 논란이 있었다. 국민에게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는지, 하늘이 도왔는지 카드사들이 순순히 1000억원을 내겠다고 사인하고, 사진도 찍어 언론에 공표했다. 돈만 모으면 문제가 술술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이 IC칩으로의 전환 계획이 상당히 위태롭게 됐다. 국세청이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1000억원 중 절반을 증여세로 내라고 한 것이다. 지원 받을 가맹점의 수가 우선 반토막나게 생겼다. 더 큰 문제는 밴사들은 밴 대리점으로 핑계를 대고, 밴 대리점은 뭐 굳이 돈 들여 마그네틱에서 IC칩 카드로 바꿀 필요 있냐며 뒤돌아 앉았다. 카드-밴-밴대리점-가맹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구조가 새로운 기술과 제도의 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은 마그네틱에서 IC칩 카드로 바꾸면 누가 효익을 얻는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수혜자 비용 분담의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지금 부정사용에 대해 돈 내는 주체는 카드사들이다. 카드 잃어버렸다고 신고만 하면 신고 이후 사고금액은 100% 카드사가 부담한다. 그 금액이 연간 100억원이라고 하는데 지금 카드업계가 부담하는 금액이 전체적으로 1000억원이고 아마도 거의 두 배의 돈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POS 프로그램 수정에는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소스코드 없는 포스 기기들이 많다. 서명에서 비밀번호로 바뀌면 코드를 수정해줘야 한다. 밴, 밴대리점들도 지금 1년에서 3년 약정을 맺어 꼬박꼬박 수수료 받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이대로 오래오래 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현재 추진체계는 당국이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죄로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추진 주체와 절차가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된 조직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1000억원은 큰돈이다. 수혜자를 잘 생각해 보면 훨씬 적은 돈으로 좀 더 긴 시간으로 정확하게 추진할 수 있다. 그래야 뒤탈도 없고 본래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