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4월 넥슨은 천리안을 통해 ‘바람의 나라’를 처음 선보였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최초로 그래픽을 입힌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바람의 나라’는 2014년 현재 국내에서만 1800만명에 이르는 이용자를 보유하며 세계 최장수 온라인 게임으로 새로운 기록을 써 나가는 중이다.
1994년 12월 넥슨 창사 이후 한국은 온라인게임이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적인 산업을 일궈냈다.
◇온라인게임 단기간·고성장 성공담 썼다=2014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게임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로 미국, 일본, 중국, 영국에 이어 세계 5위권이다.
온라인게임으로만 범위를 좁히면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서 21.3%를 차지하며 중국에 이어 2위 자리를 유지하는 중이다.
온라인게임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중 단연 독보적인 비중을 자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콘텐츠 수출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58%에 달한다. 게임수출액 중 90%는 온라인게임에서 발생한다.
윤형섭 상명대 게임학과 교수는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은 1990년대 초반 불법복제 방어 이슈와 네트워크 인프라 급성장 등을 배경으로 단기간에 급격하게 성장했다”며 “우리나라 산업 측면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말했다.
20년 동안 기업과 창업자 성공담도 쏟아졌다. 2014년 12월 현재 15개 주요 상장 게임사 시가총액은 약 11조5000억원(넥슨 제외)에 달한다.
김정주(NXC 대표), 김택진(엔씨소프트 대표), 방준혁(넷마블게임즈 의장) 등 현업 경영진을 비롯해 김정률(전 그라비티 대표), 김건일(전 게임하이 대표), 허민(전 네오플 대표) 등 창업과 기업매각에서 성공사례가 잇달아 나오며 산업에 활기를 더했다.
◇게임중독, 아직도 넘지 못한 산=20년 동안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임산업은 덩치를 키우는 동안 부작용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지 못하며 최근 수년간 ‘규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 일각에서 게임중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가 이를 산업적으로 해결하려들며 논란이 커졌다.
국회에서는 게임사 매출 일부를 강제 징수하는 법안이 발효됐고, 청소년 이용층은 12시 이후 강제로 게임접속이 차단되는(셧다운제) 제도가 현실화 됐다.
게임사들은 게임중독 이슈가 불거지자 공동 대응전선을 구축하며 사회공헌 활동 등으로 뒤늦은 대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게임중독 이슈는 2010년 이후 산업 중심이 PC·온라인에서 모바일로 급격히 넘어가며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셧다운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게임 비즈니스의 중심이 구글, 애플, 다음카카오, 라인 등 모바일 플랫폼사로 넘어가며 구제 대상을 찾기 애매해진 탓이 크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게임규제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 것도 한몫했다.
이재홍 숭실대 교수(게임학회장)는 “규제 이슈는 해결된 것이 아니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조건만 다시 갖춰지면 언제든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국내 게임산업 성장률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규제 논의가 다시 일어나게 되면 돌이킬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사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인식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한 창조적 게임 콘텐츠와 모바일 게임사 등 최근 급부상한 신진 세력의 노력이 더해져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교수는 “기능성게임 등 게임의 역기능을 상쇄 할 수 있는 긍정적 콘텐츠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많아져야 한다”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기존 게임업계와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한 신흥 게임업계가 힘을 합쳐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