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자기 혁신으로 세계 산업계를 군림해온 제너럴일렉트릭(GE). 바로 그 GE가 지금 창사 이래 최대의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130여년전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GE를 창업할 때만 해도 제조업은 당시 최첨단의 초일류 부가가치 산업이었다. 이후 한세기 넘게 GE의 독주는 계속됐다. 하지만 21세기들어 정보통신기술 등에 그 자리를 내준 뒤 GE는 박제된 공룡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 GE가 인터넷과 모바일이 판치는 이 시대에 또다시 ‘제조업 회귀’를 기치로 내걸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제조 기업으로의 회귀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물’과 ‘데이터’가 융합하는 21세기 산업혁명기, GE는 ‘산업 인터넷’의 선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엔진과 터빈, 철도 차량 등의 수많은 센서를 통합하고 고객 현장에서 그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여기서 나오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고장 예방과 가동효율 향상에 연결하는 것이 바로 산업 인터넷이다. 수집된 데이터는 GE의 개발 과정에도 반영, 제품 설계의 최적화로 연결된다.
하드웨어로 장비를 파는 것이 제조업의 제1단계고, 제품 판매 후 유지·보수 등으로 매출을 올리는 서비스화가 제2단계였다면, 산업 인터넷은 GE에게 있어 ‘제3단계’의 사업 모델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GE소프트웨어의 빌 로우 부사장은 “아마존이 소매업을, 애플이 음악산업을 각각 파괴한 것과 같이, GE도 바뀌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GE 산업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은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다. 이를 통해 항공과 전력, 병원 등 다양한 고객사에서 추출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 낸다.
센서에 모이는 빅데이터는 기계의 유지·보수와 효율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식품과 일용품 제조업체, 인프라 기업 등 모든 업종에서 재고와 물류의 최적화, 수요 예측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를 위해 GE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았다. 지난해 가을 제프 이멜트 GE 회장 겸 CEO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빅데이터 활용을 통한 산업 인터넷 협력’을 약속했다.
이들의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145대의 소속 항공기를 월 1만6000회 비행시키는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항공은 GE의 산업SW를 이용, 연간 1500만달러의 유류비를 절감했다.
GE가 활용하는 것은 알리탈리아 항공기에 탑재하는 대당 수백개의 센서. 여기에서 엔진의 상태나 온도, 연료 소비량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를 비행 계획과 비교하여 기존보다 효율적인 비행기의 운항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예컨대 ‘착륙시 날개에 붙어있는 플랩의 제어 방법을 변경하면 소비하는 연료를 줄일 수 있다’거나 ‘하강 속도를 달리 하면 연비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이상적 비행기 조종법을 제시한다.
전통 제조업의 눈으로 보면, 이는 일개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인 GE가 제안할 사항이 아니다. 자존심 센 항공사 입장에서 보면 ‘월권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계 항공사들은 잇따라 GE의 이같은 서비스를 받길 원하고 있다. 미국의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델타항공 등이 GE의 고객사다. 중동의 에티하드항공, 말레이시아의 에어 아시아 그룹 등 GE의 항공업계 고객사 수는 이미 30여곳에 달한다.
GE는 세계 민간 항공기 엔진 시장의 60%를 점하고 있다. 전 세계 항공기의 운항 데이터가 GE에 모인다. 이를 가공하고 분석하면 그 결과치는 다양한 상품으로 탈바꿈한다.
지난해 GE의 매출은 1460억달러, 영업이익은 169억달러에 달했다. 지난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E는 금융 및 미디어 등 비핵심 부문은 대폭 축소하는 대신, 그룹의 본류인 ‘제조업’에 천착한 결과다.
GE의 제조업 강화 추이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