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올 한해 참 잘 견뎠습니다, 우리 미생들

[신화수 칼럼]올 한해 참 잘 견뎠습니다, 우리 미생들

얼마 전 30·40대 벤처창업가 송년회다. 1년 새 신상 변화가 많았다.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간 이도 있다. 경영이 힘든 어느 벤처기업 사장이 직원 창업을 시켜 받은 기술금융 대출금을 회사 운영비에 보태 쓴다는 얘기도 나왔다. 뜬소문 같은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된 행위지만 그 사장 심정만큼 알겠다는 눈빛이 가득했다.

세밑 대기업 인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승진은 적고, 귀가 통고는 많았다. 받아줄 곳이 딱히 없는 50대들이다. 한창 돈 쓸 일이 많을 텐데 한동안 노후 준비를 접어야 한다. 머리 큰 자녀라면 ‘알바’를 뛰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한다. 취업해도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요즘 청년들이다.

지난주 한 대학 창업경진대회 준비모임이다. 뜻밖에 이공계 학생은 셋 중 하나에 불과했다. “걔들은 취업 걱정이 없는지 창업을 별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우리랑 형편이 다른지…” 인문사회계열 학생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코스닥에 상장한 기술기업이 있다. 해외에도 잘 알려졌다. 실적도 좋다. 그런데 개발자를 구하는 게 늘 고역이다. 어렵사리 만나 설득해도 대기업을 향한 마음을 바꿀 수 없다. 이 회사 사장은 “눈높이가 너무 다르다”며 “미래 인재로 키울 만한데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직장인, 기업 경영자 가릴 것 없이 고달팠던 한 해가 드디어 간다. 세월호 참사까지 겹쳐 제발 빨리 갔으면 했던 해다. 불경기라 취업도, 임금인상과 승진도, 회사 경영도 여의치 않았다. 새해 전망도 좋지 않다. 더 나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돈다. 정부가 경기 진작에 갖은 애를 써도 실물경제 한파가 가시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기업인 사면까지 거론할까.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경기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준비한 이에게 되레 새 기회가 온다. 단, 뻔한 길을 가면 안 된다. 결과도 뻔하다.

자질이 스펙보다 훨씬 멋진데 스스로 깨닫지 못한 취업준비생이 너무 많다. ‘나 이런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도 쟤만큼 한다’라는 말만 하니 탈락이다. 시야도 좁다. 보석 같은 중소·중견기업이 꽤 있는데 전혀 보지 못한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게 아니다. 남이 아닌 나의 잣대와 안목을 키우라는 말이다.

고령화시대다. 40·50대가 예전으로 치면 30·40대다. 늦든 이르든 이모작은 이제 직장인 필수 과목이다. 그런데 안 해본 통닭집만 본다. 그간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살리면 청년 창업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다만, 생각은 젊고 열려야 한다.

중소·중견기업 경영자는 더 당당해져야 한다. ‘을’로 오래 지내니 체질이 됐다. 이제 ‘갑’의 눈으로 대안을 먼저 찾아 제시할 때다. 그래도 ‘갑질’을 하면 갈아치우자. 글로벌, 융합 세상이다. 착한 갑도 분명 있다. 스트레스를 종업원과 더 작은 업체에 대한 갑질로 풀면 절대로 판을 바꿀 수 없다. 그 수렁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새해에는 중소·중견기업과 벤처기업을 축으로 20대 취업준비생부터 50대 퇴직자까지 ‘미생’들이 어우러져 ‘완생’ 꿈을 꾸면 어떨까. 분명 인연인데 서로 존재 자체를 몰라서, 바삐 사느라 만나지 못했다. 새해엔 이런 인연 생길 수 있다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희망을 품자. 아직 죽지 않았다. 더 견딜 만하다. 벌써 지쳐 쓰러지기에 우리는 너무 젊고, 자존심도 상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