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경제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내수침체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주요 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새해 전망도 밝지 않다. 글로벌 경제 회복도 더디고 국내 소비도 여전히 침체돼 있다. 이에 안철수의 ‘경제 리더십’이 재조명받고 있다. 본지는 안 의원을 만나 2015년 새해의 계획과 열정, 포부를 들어봤다. 2012년 유력 대선후보였던 그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담=김원석 글로벌뉴스부장(신년특집팀장)
◆사진=윤성혁 차장
◆정리=송혜영 기자
-CEO에서 학자를 거쳐 정치인이 되셨습니다.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청춘 콘서트 같은 경우는 학생, 전문가, 벤처 기업가 등으로 한정됐는데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또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에만 그쳤다면, 이제는 무엇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특히 내수활성화를 위한 견해를 밝혀주십시오.
▲중장기적으로 구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빠지거나 일본보다 불황 시기가 훨씬 길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40년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인구구조 부분도 문제입니다. 2028년에는 총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2060년까지 이 추세가 악화됩니다. 앞으로 몇 년 후부터 인구가 줄어드는 기간인데 이때를 잘못 보내면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시기를 잘 보내야 합니다. 구조개혁을 해야 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지 크게 두 축을 갖고 가야 합니다. ‘혁신 경제’와 ‘생산적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명 ‘두 바퀴 경제’라고 하는데 혁신경제는 창조경제와 비슷하지만 넓은 개념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를 이끌고 온 커다란 축들인 대기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큰 축 옆에 또 하나의 축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중소기업, 벤처기업, 지식경제 산업, 내수라는 다른 축을 세워서 두 축을 갖고 경제를 운용해야 합니다. 그 구체적 방법은 혁신경제로 각 분야의 혁신이 일어나게 하는 제도적 지원을 통해 만들어야 합니다.
내수를 부양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과 가계 부채를 관리하고 어떻게 하면 줄여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정책들이 병행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수 활성화가 안 됩니다. 빚이 너무 많고 직업이 없거나 비정규직이 가계 소득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다보면 내수 활성화가 될 수 없습니다.
-지식경제 전문기업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플랫폼이 되도록 키우려면 틀이나 룰을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예전처럼 앞에서 끌어가는 역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은 앞에서 끌고 돈을 나눠주고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 즉 제도적 보완과 지원 및 중장기적 구조개혁을 해야 합니다. 한때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했는데 정부는 왜 이공계를 기피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공계 학생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내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대표 정책이 장학금이었습니다. 이공계 장학금은 ‘일단 입학은 해라, 졸업 후에는 모르겠다’는 것으로 이런 정책은 단기적이고 중장기적이지 않습니다.
-창업 실패 후 패자부활전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창업은 ‘고위험, 고수익’이기 때문에 투자를 받아서 해야지 대출을 받아서 하면 안 됩니다. 최근에 많이 보이는 현상이 대출을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을 서고, 대표이사 연대보증을 섭니다. 실패하면 대표이사 개인 빚이 돼서 신용불량자가 되고 재도전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에쿼티 파이낸싱(Equity Financing)이라고 창업을 위한 사업자금 마련 방법이 있는데, 이 자금 크기가 한국은 매우 작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또 대표이사 연대 보증제를 없애야 합니다.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악용하면 어떻게 일벌백계하는지도 강력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최근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각 경제 주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 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십시오.
▲현시점에서 중장기적인 구조개혁을 해야 합니다. 단기간 성과가 안 나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40년 장기 불황 가능성이 다가오는데, 위기 상황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합니다. 그 공감대 하에서 고통분담을 해야 합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시키고 비정규직 처우를 올리자고 하는데, 범위를 노동자로만 국한시켜서 봤습니다. 범위를 더 넓혀 보면 노동시장과 관련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국가와 기업, 노동자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세 주체가 고통 분담을 해야 합니다.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에 왜 거부가 심하냐 하면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니까 불안한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데 투자를 하고, 기업은 해고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재교육을 해주고,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비용분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가 희생해서 비정규직을 도와달라고 하면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고통을 분담하자고 해야지요. 그 전에 위기 의식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이 상당히 심할 것 같습니다.
▲어떤 한 분야 문제를 풀려고 할 때 경제·복지·노동 세 분야가 함께 모여서 다양한 각도의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푸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동안에는 경제에 집중한 나머지 고용이나 복지가 등한시되기도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생겼지요. 이제는 사회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경제부터 IT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만든 후 리스크와 문제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및 IT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혀주십시오.
▲지난해 말 대전 창조경제센터를 다녀왔는데 중점을 두는 게 창업입니다. 제가 문제점을 이야기했더니 그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오해하거나 폄하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새롭게 창업된 기업 숫자를 보라 얼마나 잘 되고 있냐”고 해서 더 걱정이 됐습니다. 그게 성과 지표가 아닙니다. 기존 회사들이 얼마나 더 성공했는지 훨씬 중요합니다. 갑자기 창업숫자가 늘어난 게 성공지표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성과 지표, 관리 지표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센터를 가면서 첫째, 정부가 주도해서 대기업이 직접 창업 활동에 관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와 둘째, 전국에 17군데 분산해서 한 대기업이 한 군데씩 독점해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문제의식이 들었습니다.
대기업이나 정부가 뒤에서 돕고 창업하는 기업이 전면에 있어야 성공합니다. 토양을 만들어서 자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곳이 실리콘밸리입니다.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 미국 전역에서 열 군데도 안 됩니다. 그런데 한국 같이 좁은 곳에서 17군데나 만드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입니다.
-글로벌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양적완화 추세 속에서 한국은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세계 경제 흐름을 보면 달러가 강세고, 엔화와 유로화는 약세입니다. 이런 환경 자체가 구조적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엔화와 달러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 관점에서는 안 좋은 방향입니다. 또 중국이 모든 산업 분야에서 대한민국 경쟁력을 추월할 것이고, 농산물보다 중소기업 기반을 뿌리째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인구 구조 문제도 있고, 이런 상황을 몇 년 내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나서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로 특히 인구 구조는 정책을 지금 내세워도 효과를 보려면 몇 십 년이 걸립니다. 지금도 늦었습니다. 급한 일만 하고 중요한 일을 안 하니까 위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축인 혁신 경제와 생산적 복지로 대표적 분야가 노인 장애인들이 자립·자활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기, 맞벌이 부부나 경력 단절 여성들을 더 우선순위로 하는 보육시스템, 기업하다 실패한 사람들이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복안이 있습니까.
▲시급하게 할 수 있는 게 여성인력 활용입니다. 여성인력을 활용하면 생산가능 인구 감소를 완화시키고 가계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 노인 일자리 부문을 활용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을 통해 활용하는 북한 인력도 활용해야 합니다. 남북 경제협력을 하면 중국보다 인건비가 싸니까, 중국 제품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것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정책 병행이 필요합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하드웨어에만 투자하고 소프트웨어, 콘텐츠, 가동·유지, 시큐리티 등 눈에 안 보이는 부분에는 투자를 안 했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떨어지는 게 보안에 대한 투자입니다. 사고가 안 나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보안에 투자를 많이 해서 사고 안 나면 괜히 투자했다고 생각하는 현실입니다. 미국은 예산의 10%를 정해놓고 보안에 책정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습니다. 국가의 중요 시설들도 보안에 얼마나 취약한지 모릅니다.
-공무원 연금개혁은 어떻게 보십니까.
▲연금 개혁 필요하다는 데 다들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새누리당 모두 근시안적으로 보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공무원 연금도 공무원의 역할과 사기업의 형평성, 차이를 고려해서 설계된 것입니다. 이것만 개혁해서 될까요. 지금 상황에서 공무원의 역할이 재정립됐다면 보수 체계 전반을 봐야 합니다. 공무원 보수체계가 일반 사기업과 얼마나 차이나는 게 적정한지, 그 중에서 공무원 연금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게 좋을지를 봐야지, 보수는 그대로 두면서 연금만 건드리면 불만 소지가 높지요. 지금은 공무원 보수 체계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그 일환으로 공무원 연금 개혁 방안을 잡아야 설득이 되고 협조가 될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가 외국과 FTA를 연달아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처럼, 너무 많아지면 꼬여서 허점이 발견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예전에 체결한 FTA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FTA 추가 체결 여부를 선택해야 합니다. 국회에 들어와서 느낀 것인데 국회는 결산에 관심이 없고 예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보면 결산에서 교훈을 얻어야 제대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은 지나간 것에는 관심이 없고 벌이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결산에 관심을 쏟아야 세수 누출,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FTA도 그 이전에 체결한 FTA에 대한 점검과 평가를 꼭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상은 무엇입니까.
▲예전에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밝혔지만 초심 그대로입니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키워드가 비슷합니다. 세 가지로 ‘통합된 국가’ ‘정의로운 사회’ ‘한반도 평화’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가지고 가야 할 키워드입니다.
-2015년을 맞는 화두를 사자성어로 표현해 주신다면 무엇일까요.
▲중국 고대왕조인 상나라의 군주 반경이 한 말로 ‘생생지락(生生之樂)’을 꼽고 싶습니다. 생생지락은 ‘만민들로 하여금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 꾸짖음을 들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군주와 정치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편하게 잠자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40년 불황이 닥쳐올 수 있는데, 사람들이 참는 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해서 행복해지고 기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적·총량적인 성장은 질적인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총량만 보지 말고 내부 구성원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생생지락을 올해 화두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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