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초연결사회에 던지는 프랑스의 교훈

[ET단상]초연결사회에 던지는 프랑스의 교훈

얼마 전 프랑스 ‘미니텔의 아버지’이자 통신정책국장을 역임한 제라드 테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미니텔은 1982년 프랑스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비디오텍스 서비스다. 인터넷이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는 흔한 인식과 달리, 디지털 시대는 사실상 1960~1970년대에 원거리 통신과 정보통신 처리기술이 만남으로써 시작됐다.

바로 프랑스 미니텔이 그 중심에 있었다. 프랑스 초창기 정보화 정책의 주역이었던 제라드 테리는 “프랑스가 정보화 혁신을 일찍 시작했지만 한국이 오히려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1978년 댈러스의 한 전시회에 출품된, 당시로는 혁신적인 비디오텍스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한다. 이는 미니텔 사업의 잉태를 예고했다. 당시 방송계에서는 콘텐츠부터 확충한 후 미니텔 망을 구축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적극적 후원과 프랑스텔레콤을 주축으로 과감히 실행됐다.

프랑스 우체국은 단말기를 무료로 공급하고 콘텐츠 사업자에게 번호를 부여했다. 전화번호 검색부터 시작해 대학입시 전형, 열차 예약, 온라인 채팅과 같은 양방향 서비스로 발전했다. 1990년대에는 900만대의 미니텔 단말기가 프랑스 각 가정과 공공기관에 보급돼 2500만명이 사용했고 서비스 종류는 2만3000가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미니텔의 성공 덕분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된 나라(the most wired country)라는 명예를 얻었고, 이후 앨빈 토플러에 의해 미래정보사회 모습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미니텔 사업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미니텔은 개별 서버 간 상호연결이 막힌 중앙 집중적 속성을 가졌고, 이에 따라 프랑스텔레콤의 독점적 지위와 불법적 콘텐츠를 막으려는 검열적 내용 규제로 이어졌다.

이러한 폐쇄성은 글로벌화를 지향하고 분산화된, ‘그물망’ 형태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인터넷의 등장으로 결국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1990년대 초 제라드 테리는 은퇴 후에도 정보 고속도로 건설을 주장하는 등 혁신의 박차를 가하려 했으나 프랑스 중심의 폐쇄적 접근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인터넷 시대에 굴복하고 말았다.

한국의 정보화는 비록 프랑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1980년대 말 하이텔 사업으로 PC통신 시대를 열었고, 국가주도의 초고속망 구축사업을 급속히 추진, 도전적인 기업들과 국민들의 우수한 역량이 결집돼 오늘날의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제라드 테리는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ICT 모범국가다. 혁신 DNA가 흘러넘치는 한국의 미래는 밝다”고 평가하며 “기술보다 인간의 프라이버시나 사이버 시큐리티와 같은 문제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수원 사건 같은 사이버 침해사고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과거 1970·1980년대 우리나라 국가정보화 정책은 컴퓨터 시스템을 행정업무에 활용하고, 주요 공공분야에 도입, 연계해 정보교환을 신속히 하는 것에 국한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고성능 컴퓨터 보급을 개인영역에까지 확장하고 사회 전분야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보다 많은 용량을 신속히 전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보화 범위와 수단이 무한대로 확대돼 ICT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ICT 신수요 창출 및 사회현안 해결에 기여하는 역할로 확장됐다.

이제 우리는 정보화 혁명에 이어 초연결 혁명을 맞이했다. ‘한계비용 제로사회’의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에 따르면 초연결 기술은 공유·네트워크 기반의 경제 활동을 촉진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집단지성, 빅데이터 분석 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인간중심의 초연결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초연결 시대는 소득, 언어, 국경, 나이와 같은 기존 아날로그적 장벽을 초월하고 기술중심이 아닌 보다 인간적, 창조적인 사회로 지향해야 할 것이다. 또 저성장, 고령화, 저출산, 재난·재해, 사이버 테러 등 우리 주변에 산재한 문제를 타개하고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소통이 증진됨에 따라 공유와 협력이라는 가치가 더 부각된다. 이러한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혁신가와 창조성이 넘쳐나는 토양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의 미니텔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협업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고,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 해결과 디지털 기본권이 보장되는 안전한 정보보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포함, 정부는 초연결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보화 전략과 주요 실천과제를 마련하고 있다. 지금은 다시 한 번 IT강국, 대한민국의 힘찬 재도약을 시작할 시점이다. 미래는 꿈꾸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명심하자.

강성주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화전략국장 sjkang@msi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