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그만두다’는 2014년 일본에서 출간돼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소비자본주의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개인의 삶에 맞닿은 자본주의 대안을 제시한다.
책의 저자 히라카와 가쓰미는 여러 저작과 강연을 통해 자본주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명사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소비 패턴을 낱낱이 분석한다. 자본은 개인을 착취한다. 자본이나 기업에 시간과 영혼을 뺏긴 개인은 스스로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도 모를 욕망 때문에 허망한 소비를 한다.
개인을 착취하고 헛된 소비로 자본을 얻은 기업은 더 많은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더 강력하게 개인을 착취한다. 이런 ‘착취-스트레스-소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로 우리 삶을 지켜내야 한다. ‘돈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는 돈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이렇게 자본과 기업에게 많은 힘을 쥐어준 것은 우리의 ‘소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관점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소비’ 측면에서 찬찬히 살펴보고, ‘탈소비’라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기서의 ‘소비’는 먹고사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고,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어서 쓰는 행위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소비’다.
책에 언급된 이야기는 모두 일본 사례다. 하지만 단지 일본의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 우리의 현재 모습과 흡사하다. 책은 저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현대경제사를 풀어놓으며 자본주의 본질과 모순을 통찰했다.
전후 소비 1세대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 TV 보급과 주5일제에서 비롯된 소비문화 확산, ‘동네’라는 사회적 공동 자본의 소멸, 부가가치 창출 산업만을 강요하는 경제성장론 등 이 책에서 들려주는 굵직한 경제 변화의 모멘텀과 세태의 흐름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우리가 실제로 느끼며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먼저 그 삶을 걸어온 일본의 한 지식인이 던지는 이 화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지금 ‘탈소비’인가. 자본주의의 한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4년 한 해 출판시장에 ‘자본론’ 붐이 인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비에 대한 욕망은 안정적이고 리드미컬한 생활 속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라며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소박하지만 힘 있게 지켜가며 ‘탈소비’와 ‘소상인’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통찰하고, 제시한 대안을 생활로써 증명하는 이 책은 ‘자본주의 다음’을 논하는 기존의 책이 이론, 정책에 주목한 것에 비해 자본주의사회 속 ‘개인의 삶’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이 주목할 만하다.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 펴냄. 1만4000원.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