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지금도 수출에 씨앗을 뿌리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근대화와 산업화, 압축 성장의 명분을 앞세워 제조업을 강하게 키우고자 했던 지난 정권의 결과물이다.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휴대폰과 자동차, 반도체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노둣돌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우리의 제조업은 넛크래커 현상에 빠졌다. 보편성의 모방기술과 전문 인력으로 조립형 하드웨어 제품을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면서 더는 괄목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사람의 뇌에 해당하는 운용체계(OS) 없는 휴대폰은 중국 스마트폰 기업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 1위라는 삼성전자 IM부문 실적 둔화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은 한국’으로 명명되는 한국의 조선산업은 세계 1위로 40%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 또한 2009년부터 중국에 시장을 내줬고 조선업계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도 불안하다. 지구 온난화로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전기차로 명함을 바꾸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내연기관에 올인한다. 미국 정부와 유럽연합이 전기차에 모든 정책을 집중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제조업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융합(Convergence)을 제시한다. 소통과 협력, 공유가 스마트사회를 만들었듯이 국내 제조업에도 융합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스마트공장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산업정책실 내에 ‘스마트공장팀’을 신설했다. ‘제조업 혁신 3.0’ 전략에 시동을 걸 첨병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시동만 걸어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연료만 소모된다. 제조업 3.0 전략은 지난 정부에서도 시동만 걸었던 사업이다.
스마트공장은 공장과 공장이, 내부 설비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돼야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야 하고 이상적인 제조원가를 구현할 수 있는 유연한 환경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ICT, IoT,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와 같은 응용기술이 활용되고 접목돼야 한다. 특히 스마트공장은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야 한다. 매번 그랬듯이 현 정권이 끝나면 사라질 수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승계, 발전시켜야 한다.
스마트공장은 융합의 결정체다. 융합은 기존의 경계를 허물어야 성공할 수 있고 그래야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이미 산업은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어제까지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산업영역의 강자들이 내일의 적으로 돌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누가 먼저 경계를 허무는지가 운명을 결정한다. 허물지 못하는 자는 먼저 허문 자에게 복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융합의 핵심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도 어긋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2000년대부터 자동차·휴대폰·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한국은 IT강국이라는 브랜드를 얻었다. 이제는 이 브랜드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위기는 찬란한 영광이 빛날 때 은밀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협업이 어렵다는 것은 핑계다. 부처 간 칸막이만 없애도 제조업 혁신 3.0 프로젝트는 본궤도에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새해 산업부 스마트공장팀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