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47>혁신과 융합

[이강태의 IT경영 한수]<47>혁신과 융합

새해 아침 금융권 수장들이 발표한 화두를 종합하면 혁신과 융합으로 요약된다. 혁신은 노상 하던 얘기니까 그렇다고 쳐도 새로운 것은 융합이다. 어쩌면 융합하기 위해서 혁신을 해야 하니까 핵심은 융합을 하겠다는 것이다. 융합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서로 섞이거나 조화돼 하나로 합쳐지다, 둘째 둘 이상의 사물을 서로 섞거나 조화시켜 하나로 합함으로 되어 있다(이상 국어 대사전). 한마디로 두 개를 합쳐 하나의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나 시장을 만들어내겠다는 뜻이다.

왜 금융권의 새해 화두가 하필이면 융합일까? 요즘 유행하는 핀테크 때문일까? 핀테크가 시발점은 되겠지만 사실 앞으로 5년 내 핀테크가 금융권의 판을 뒤흔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신용도를 바탕으로 남의 돈을 받아서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산업이다. 남의 돈을 잠시 맡아서 굴리기 때문에 금융기관 자체의 신용도가 중요하고 리스크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금융업의 본질적 측면에서 핀테크가 산업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핀테크의 진행 방향을 보면 미시적으로는 간편 결제의 한 방편으로, 거시적으로는 이체와 펀드로 발전하고 있다. 즉 본질적인 금융의 기능이 진화된 것이라기보다는 금융 수단이 간단하고 편리한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을 뿐이다. 한동안 금융공학을 통한 파생상품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 건재하고 있지만 상당히 많은 파생상품들이 거품을 형성하면서 어느 날 100년 된 금융회사들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다. 금융의 본질을 무시하는 어떠한 새로운 시도도 거품일 뿐이다.

핵심은 신년 화두가 유행 따라 대두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월급쟁이들의 자조 섞인 한탄 중의 하나가 30년째 내년이 항상 위험하다는 것이다. 재벌 오너나 사장들은 잘되면 잘되는 대로, 잘 안 되면 잘 안 되는 대로 항상 우리 기업은 내년이 고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마른 수건도 짜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고, 파부침주하고, 뼈를 깎자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어떻게 하자는 구체적인 얘기는 없고 안주하지 마라! 혁신하라! 창의적으로 일하라! 융합형 사고하라! 등등의 주문만 한다.

최근엔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임직원은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까지 위협을 한다. 혹자는 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냐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먼저 달을 보라고 말로 하거나 스스로 달을 보면서 “저 달 참 예쁘지 하면 될 것 아닌가?”

자기도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하늘을 가리키며 달을 보라고 하니 월급쟁이들은 답답할 뿐이다. 그것도 매년 같은 식으로 되풀이 되는 신년 전략 목표나 중점 추진과제나 경영화두는 정말 의미 없다.

융합만 해도 그렇다. 두 개의 산업에서 하나의 융합산업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융합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최고수들이 만나야 한다. 그 융합이 내부적으로 진행되려면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서 서로 비전을 공유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격정적으로 일해야 융합반응이 일어난다. 외부와의 융합을 꾀한다면 최고의 기업들이 경영자에서 말단 직원들까지 서로 비전을 공유하고 힘을 합쳐야 융합반응을 한다. 적당한 인재와 적당한 기업 수준에서는 절대 융합반응이 일어날 수 없다. 갑과 을이 명확한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 수장과 신규 스타트업 사장이 수시로 만나면서 같이 비전을 공유하고 토론으로 밤새우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기존 조직과 인력들 보고 융합적 사고를 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융합이 일어나기 위해선 조직과 조직원들의 생각이 개방형이 돼야 한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고 내 것을 내 줄 수 있을 때 융합이 가능하다. 그래야 융합을 목표로 이른바 생태계도 형성이 가능하다. 또 다른 유행인 협업과 상생도 개방적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해 들어 모든 경영자들이 융합을 얘기하고 혁신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기업은 전혀 개방적이지 않으면서, 자기 조직은 절대 개방적이지 않으면서, 자기 기득권은 내려놓지 않으면서, 순혈주의와 연공서열에 집착하면서, 갑과 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오너나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임원의 주요 덕목이면서 융합을 얘기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지금은 스피드 경쟁 시대다.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서부터 시장 선점까지 그렇다. 스피드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어깨 힘을 빼야 한다. 유연한 조직에서 애자일이 가능하다.

융합이란, 나는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족하니 결과가 좋으면 과실은 네가 다 가져라 할 정도의 성숙된 인격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대형 금융기관을 갑으로 하고, 중소 IT개발업체를 을로 해서, 을이 밤새워 개발한 간편 결제 모바일 앱을 홍보하면서 갑이 융합에 앞장서고 있다고 얘기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금융기관 수장들이 융합이 일어나기 위해 자기가 먼저 해야 할 일을 알고 융합을 새해 화두로 잡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