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임춘성)에 참석한 하원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의미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ICT 코리아 2030년의 비전-디지털 행성시대로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디지털 행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하원규 연구원에 따르면 물리적 행성(제1 지구)이던 지구는 인터넷 혁명을 통해 ‘사이버 공간’이라는 가상 행성(제2 지구)으로 진화했고, 이제 이 물리적 행성과 가상 행성이 초연결되는 ‘디지털 행성(제3 지구)’으로 이행을 앞두고 있다.
제1 지구에서 제2 지구로의 이행을 촉발한 기술이 인터넷이라면 제3 지구로의 이행을 가져오는 것은 사물인터넷(IoT)이라는 것이 하 연구원 주장이다. 특히 그는 사물인터넷의 발전된 형태인 만물인터넷(IoE)이 극도로 발전한 ‘만물지능인터넷(AIoE·Ambient IoE)’이 디지털 행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원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 행성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가 ‘거시의 세계(天)’를 이루고 만물인터넷이 ‘미시의 세계(地)’를, 스마트기기 사용자가 ‘생활의 세계(人)’를 담당하는 천지인 만물지능인터넷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 연구원은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사람과 사물, 공간 등 모든 요소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디지털 유기체’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면서 “전기가 빛과 에너지, 열을 전달해 전 세계를 바꾸었듯이 만물지능인터넷이 지구사회를 혁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 연구원은 2030년경이면 만물지능인터넷이 산업 전 분야에 폭넓게 보급되면서 ‘만물지능산업(만물지능 기반 융복합형 창조산업)’과 ‘만물지능 네트워크(사람·사물·환경 등 모든 대상의 네트워크화)’ ‘만물지능인프라(전력·교통 등 모든 인프라가 인터넷과 대융합)’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하 연구원은 이 같은 디지털 행성 시대를 우리나라가 선도하기 위한 ICT 코리아 2030 비전 ‘A(Ambient)-코리아’를 제시했다. 초연결 만물지능공간 강국을 만들어 연간소득 5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제언이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에 100억명의 스마트폰 가입자와 1000억개의 지능형 단말기, 조 단위 센서 인프라가 구축될 전망인 만큼, 이보다 10년 앞선 2020년까지 이에 대한 기술적 준비를 마쳐 세계를 선도하자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그는 A-코리아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5세대(G) 통신과 20기가(Gbps) 가정 내 광케이블(FTTH), 700메가헤르츠(㎒) 주파수, 스마트센서를 전략적 국가 인프라(SoC)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전후로 이 같은 인프라를 전국에 구축하고 2030년에는 이미 성숙단계에 접어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정부와 교통, 재난, 전력, 환경, 공공서비스, 안전, 도시, 보건의료, 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서비스 등 사회 및 산업 전 분야가 ‘최적 연계’ 상태에 도달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하 연구원은 전망했다.
하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A-코리아로 가기 위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각종 정부정책의 ‘골든타임’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700메가 이슈다. 방송·통신 진영 생태계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데도 정치적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전선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전봇대를 예로 들기도 했다. ICT 참여 사업자들이 자기만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동축케이블을 가설하다보니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전봇대 풍경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협력해 광케이블을 인프라로 구축한다면 진정한 방통융합 전송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 연구원은 “700메가 대역에 대한 이해관계자 간 공동운명체 인식에 기반해 국가적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면서 “국회와 정부, 방송, 통신 진영 간 거국적 대합의를 통해 700메가 대역을 창조산업 전략재로 사용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기술문명의 선봉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면서 “1993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정보고속도로’ 구축을 위해 노력한 것처럼 이제 향후 20년을 위해 ‘만물지능공간 고속도로’ 구축을 위해 우리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