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직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급속도로 발전하는 뇌파측정기술(EEG)을 볼 때 조만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뇌파측정기술이 발전하고 이용자 편의성이 높아지면서 이를 다른 산업에 접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초기에는 의료과학 등 일부분에만 적용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음악, 미술, 게임 등 예술 및 콘텐츠 산업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뇌파는 사람의 뇌에서 흘러나오는 전기 신호다. 주파수 대역에 따라 델타·세타·알파·베타·감마의 5가지로 측정된다. 어느 부위에서 어떤 주파수 대역의 신호가 나오느냐에 따라 감정이나 몰입도 등을 알 수 있다.
뇌파는 머리에 전극을 부착해 읽어 들이는데, 전극 수에 따라 정확도가 높아지고 가격도 치솟는다. 저렴한 뇌파측정기일수록 성능이 안 좋고 두피에 전극을 하나하나 부착해야해 실용성이 떨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미국 EGG 바이오 센서 업체인 뉴로스키가 헤드세트 형태로 출시하면서 뇌파 측정 기술이 보편화하는 데 물꼬를 텄다. 특히 예술 산업이 ‘실험정신’을 소모비용보다 높이 사는 것도 한 몫 했다.
한국 출신의 행위 예술가 리사 박(Lisa Park)은 뇌파해석알고리즘을 활용한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뇌파측정기를 쓴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따라 음악을 들려주고 주변에 있는 물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시카고 심포닉 오케스트라 소속 유명 첼리스트 카틴카 클라인(Katinka Kleijn)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티스트 아이스터(Aiste Noreikaite)가 뇌파측정 센서를 붙여 집중도를 측정해 음악으로 바꿔주는 오토바이 헬멧 ‘익스페리언스 헬멧(Experience Helmet)’을 내놨다. 이 음악은 실시간으로 재생된다.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 아트와 접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뇌파 신호를 붓처럼 활용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걸 상상하면 된다. 중국 예술가 조디 씨옹(Jody Xiong)의 ‘마인드 아트’ 프로젝트다. 16명의 장애인에게 뇌파측정 센서를 달아 전기 신호가 물감이 담긴 풍선을 터트리게 했다. 일정 정도 이상 집중하면 나오는 뇌파가 일종의 방아쇠로 작용한다.
패션과의 결합도 주목된다. 안정·긴장·중압감 등의 감정을 느낄 때 뇌파를 측정해 그 패턴을 옷에 그려 넣는 식이다. 일명 ‘뉴로니팅(NeuroKnitting)’ 프로젝트다.
게임이나 장난감에 활용되기도 한다. 게임에서는 게임 내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거나 집중력을 측정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형태로 주로 이용됐다. 뇌파가 가진 의미를 읽어내 쓰이기보다는 물체를 움직이는 데 한정됐다.
뇌파와 컴퓨터·기계를 연결해 원하는 대로 작동하게 할 수도 있다. 실제 뇌파측정기기, 뇌·컴퓨터 접속 기술(BCI)을 더해 사용자의 집중도를 분석, ‘구글 글라스’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 앱도 출시됐다. 연구 단계에선 이미 성공 사례도 많다.
뇌파 기술을 가장 눈 여겨 보고 있는 곳은 교육·의료산업이다. 상황별 집중도를 측정해 교육 체계의 실효성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거나 교육용 기기를 검증, 개선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있다. 신체활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전자기기를 개발할 때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