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엘리어트가 외계 생명체(extraterrestrial, ET)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동그란 달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33년 전인 1982년 개봉한 영화 ET의 한 장면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ET는 꼬마 주인공들과 지구에 홀로 남겨진 ET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엘리어트와 ET는 텔레파시로 교감을 나눌 정도로 가까워진다.
엘리어트와 ET가 검지를 맞대는 장면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이 장면은 당시엔 먼 미래의 상상 속 얘기로 보였지만 최근 신체 접속만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인체통신기술’이다.
인체통신기술은 신체의 한 부위를 사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이다. 상대방의 손만 잡아도 그 사람이 보고 있는 문서, 동영상, 개인정보까지 교환할 수 있다. 더 발전하면 상대의 생각까지도 교감할 수 있다.
인체통신기술은 ET에서 손가락으로 교감을 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사람의 몸을 근거리통신망(LAN)이나 케이블처럼 매개체로 활용한다. 별도의 전력 소비 없이 인체를 통해 전기적 신호를 통신수단으로 활용한다.
사람과 사람뿐만이 아니다. 복잡한 연결절차 없이 기기에 간단한 접촉만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가령 스마트폰과 TV에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도 장비를 제어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이 전기를 약간 전달할 수 있는 전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통신기술이 발달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악수만으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다. 현재는 휴대폰에 잭이나 젠더를 끼워 PC에 연결해야만 휴대폰 사진을 출력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을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휴대폰 속 원하는 사진 파일을 출력하거나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각자가 소유한 휴대 단말기 사이에 명함 정보나 문자, 사진 데이터를 전송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연인들이 손을 잡거나 몸을 기댄 상태에서 하나의 휴대형 음악 플레이어를 공유하고 각자 헤드세트에 같은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가 인체통신기술을 개발했다. 2012년에는 미국전기전자학회 기술표준위원회에서 국제 표준에 채택됐다. 앞서 2004년엔 일본 마츠시다전공이 관련 기술을 이용한 시제품을 발표했다. 이듬해 2월에는 NTT가 고속 전송속도를 실현하는 신기술 ‘레드탁톤(RedTacton)’ 기술과 시제품을 공개했다. NTT는 인체통신용 통신 모듈을 탑재한 휴대전화를 개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체통신기술 외에 먼저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의 몸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몸의 동기화’ 현상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스킨십이 사람의 관계를 치밀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체통신기술은 각자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해줄 기술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단순한 개그 소재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손가락을 마주대고 의사소통을 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